동문오피니언
류청영(57회) 열린광장/자유공원을 맥아더 공원으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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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 3.1)
자유공원을 맥아더 공원으로
/류청영 맥아더장군동상보존시민연대 대표
▲ 류청영 맥아더장군동상보존시민연대 대표
어쩌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공원이니 맥아더공원으로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개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맥아더공원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는 것을 인천시민뿐만 아니라 더 널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알리고, 세계에 알려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유커(遊客)들에게 있어서 맥아더 장군은 자기 나라 군인 수십만 명이 희생된 한국전쟁 때 적의 수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외국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관심을 갖고 수많은 유커가 밤낮으로 찾아오고 있다.
세계적인 명장인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공원이라는 의미로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부르면 대한민국 제일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1883년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인천항 개항을 통해 근대화와 산업화 문물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인천항뿐만 아니라 세계로 통하는 관문인 인천국제공항도 중구에 있다. 맥아더공원(옛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인천항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 2번째 갑문시설이 있는 근대식 항만시설로 이 또한 중구에 있다.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9m나 돼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특수 갑문시설이 필요했다. 남미를 관통하는 파나마운하의 갑문시설이 세계 최초이고 최대인데, 중구에 있는 인천항은 세계에서 두 번째 갑문시설이다.
개항 당시 중구 중앙동 일대에 각국의 대사·영사가 살고 있어서 한국에서 최초로 전화가 가설된 곳도 중구이며, 기상대 또한 중구에 처음 설치돼 기상관측을 시작했다.
인천에는 유명 관광지 53곳이 있는데, 그 중 중구에 21곳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곳이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이다.
자유공원으로 불리게 된 유래를 보면 1883년 인천항 개항 때부터 중구 운봉산(자유공원) 주변에는 미국·러시아·청나라·일본·프랑스·영국 등이 자국의 주권과 국익을 위해 조계(租界)를 형성했고 주변에 각국의 영사관 및 별장 등을 건설했다. 1888년에는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을 중구 운봉산에 조성했다. 자유공원은 처음에는 각국 조계 안에 있다고 해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서쪽에 있다고 해 서공원으로 불렸고, 이후 만국공원으로 불리게 됐다.
1950년 김일성의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밀려 한국 정부가 제주도로 옮기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등 대한민국이 존망의 위기에 몰려 있을 때 미국 국방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UN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9m로 상륙작전 성공률이 5천분의 1이라는 거의 불가능한 인천상륙작전을 뛰어난 전술로 성공시켜 우리에게 자유를 찾아줬다.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상으로 1957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 동상을 건립한 후 대한민국에 자유를 찾아준 맥아더 동상이 있는 공원이라 해 자유공원으로 개명했다.
자유공원은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고, 9·15 인천상륙작전지인 월미도가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공원이므로 맥아더공원으로 부르자는 시민들의 요청이 지속돼 왔으며, 금년에도 맥아더공원으로 개명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다수 시민의 요청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자유공원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공원이기 때문이었으므로, 보다 직접적으로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공원이라는 의미로 맥아더공원으로 개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맥아더공원으로 부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원이 돼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인천에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2016년 03월 01일 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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