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구도장원(九度壯元), 율곡(栗谷)의 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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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 5.23)
구도장원(九度壯元), 율곡(栗谷)의 길
/원현린 주필(主筆)
▲ 원현린 주필
파주에 가면 율곡수목원이 있다. 파주시는 지난 주말 파평면 율곡수목원에서 수험생과 학부모 1천여 명이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율곡 이이 구도장원길 걷기 행사’를 가졌다. 행사가 진행된 곳은 율곡수목원 내 도토리길 5㎞ 구간이다.
도토리길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걸어가던 길이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생들과 학부모들이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고 무더운 날씨 속에도 땀을 흘리며 걸었다. 율곡이 걸었던 구도장원로를 따라 걸은 수험생들이 율곡의 ‘올바른 기(氣)’를 받아 수능 대박을 터트리기를 기원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벼슬길로 나가는 등용문이었다. ‘과거’하면 조선조 율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의 합격도 어렵다는 과거시험에서 모두 9번이나 장원급제를 한 율곡이다. 율곡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본란에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 대해 약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과거시험 첫째 관문은 소과였다. 이는 초급 관리를 선발하는 보통 고시 정도다. 생원시와 진사시로 나뉘는 초시는 전국에서 각각 700명씩을 선발했다.
이들 중 한양에서 치러지는 복시를 통해 각각 100명씩을 뽑았다. 합격자들은 생원과 진사의 칭호와 함께 백패(白牌)를 받았다.
다음으로 1~3차로 이뤄지는 대과의 경우 1차는 초시로 성균관에서 보는 관시, 한성부에서 보는 한성시, 8도에서 보는 향시가 있다. 모두 240명을 선발했다. 2차는 복시로 한양에서 실시했는데 시험관의 질문에 답하는 구두시험으로 진행, 33명을 선발했다. 3차 시험은 전시로 복시에서 선발된 33명의 등급을 정하는 시험으로 왕 앞에서 시행됐다. 갑 3명, 을 7명, 병 23명으로 순위가 매겨졌다. 여기서 갑과의 1등을 ‘장원급제’라 칭했다.
과거 응시자들은 시험과목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비롯해 시(詩), 부(賦) 등 10여 과목을 공부해야 했으며, 이 책 속의 글자 수를 합해 보면 48만5천228자나 된다 한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과거응시자들이 시험 부정행위로 적발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부정행위 사례로는 남의 답안 빌리기와 답안지 바꿔치기, 글을 잘 짓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서 대신 짓고 쓰게 하는 행위, 시험장 밖에서 쓴 답안을 제출하는 행위, 미리 시험문제를 알아내는 행위, 이졸(吏卒)로 가장해 시험장을 출입하는 행위, 시험관과 서로 짜고 답안지 내용의 일부 또는 답안지의 번호를 알려줘 채점할 때 참고토록 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었다 한다.
시험 감독관의 부정사례도 전해진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광해군 2년 과거시험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친척들을 우선 합격시키는 부정행위를 저질러 탄핵을 받기도 했다.
구도장원공 율곡은 국력을 길러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시무 6조(時務 六條)’란 글을 올려 자주국방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첫째,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임명할 것. 둘째, 군민(軍民)을 양성할 것. 셋째, 재용(財用)을 충족시킬 것. 넷째, 국경(國境)을 공고히 지킬 것. 다섯째, 전마(戰馬)를 갖출 것. 여섯째, 교화(敎化)를 밝힐 것 등이 그것이다.
율곡이 병조판서에 임용된 이듬해 1583년에 선조에게 올렸던 이 글이야말로 곧 닥쳐올 임진란(1592년)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보국충절의 상소문이라 하겠다. 상소문을 접한 선조는 "이 상소문의 내용은 나라를 위한 정성이 참으로 지극하다"라고 말하고 이의 실행을 전교(傳敎)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법조인들은 대다수가 옛날 과거시험이라 할 수 있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인물들이다.
단 하루도 법조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나라를 위해 동량지재(棟梁之材)로 쓰여져야 할 인재들이 사술(邪術)에만 능해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어 걱정이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생산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을 내뿜는다. 똑같은 과거시험에 급제했어도 율곡과 같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 충신(忠臣)이 있는가 하면, 연산군 시기 임사홍과 같이 권모술수를 일삼아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간신(奸臣)도 있다.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맞는 말이다. 인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자가 관직에 나아가니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라까지 어지럽히고 있다.
2016년 05월 23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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