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차원용(77회)의 미래의 창/외로움·면역손상·조기사망의 메커니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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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세계일보(15.12. 4)
[차원용의미래의창] 외로움·면역손상·조기사망의 메커니즘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연세대 겸임교수
인간은 나이가 들면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고립돼 외로워진다. 그런데 외로운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할 경우, 공격·방어·도피 등의 생리학적·심리학적 반응을 겪으면서 환경에 맞서 싸울 것이냐 아니면 도피할 것이냐를 두고 일반인보다 더욱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생리학자인 월터 캐넌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존 수단으로서의 반응을 ‘투쟁·도피 반응’이라 하고, 또 이때의 스트레스를 ‘투쟁·도피 스트레스’라고 명명했다.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나 절망 못지않은 외로움 역시 인간의 생명을 끊임없이 마모시킨다. 이렇듯 외로움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외로움이 세포 단위에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건강에 해를 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2012년 미국 시카고대의 요아브 길라다 박사 연구팀이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연구팀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원숭이를 무작위로 추려내 새로운 집단으로 편성했다. 원숭이들은 서열을 정하기 위해 싸워 쟁취를 하든가 아니면 복종을 하든가 결정해야 했는데, 이때 받는 스트레스가 원숭이의 1000개 면역 유전자와 유전자 발현을 변경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곧 인간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원숭이와 같은 수준으로 유전자 발현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15년 ‘사회신경과학’의 대가인 미국 시카고대 존 카시오포 박사 연구팀은 외로워지면 몸이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켜 면역시스템을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병들어 죽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외로움이 심한 노인은 심하지 않은 노인에 비해 조기사망 위험이 14% 높았는데, 이는 비만으로 인한 사망 위험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연구팀은 인간과 원숭이의 몸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상대로 싸우는 유전자 발현을 연구했다. 그 결과 외로움으로 인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감소했으며, ‘투쟁·도피’를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골수에 있는 혈액줄기세포를 자극해 비정상적이고 미성숙한 단핵구를 증가시켜 체내에 높은 염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발현은 증가시키고, 항바이러스 유전자의 발현은 감소시킨다. 즉 ‘투쟁·도피 스트레스’ 신호가 정상적인 백혈구 생산을 방해해 조기 사망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에 카시오포 박사는 “특히 외로움에 빠진 노인들은 자원봉사 등 사회 활동을 통해 친구를 만들라”고 하면서 “노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외로움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스트레스는 면역 시스템을 파괴해 조기사망에 이르게 한다. 스트레스는 모든 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따라서 외로운 사람을 위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족의 배려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보다 심도 있는 연구로 혈압과 콜레스테롤 같이 스트레스 수치가 모든 병을 진단하는 표적과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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