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차원용(77회)의 미래의 창/영화 ‘매트릭스’가 현실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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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세계일보(15.12.19)
[차원용의미래의창] 영화 ‘매트릭스’가 현실로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연세대 겸임교수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1999)는 2199년의 시나리오이다. 이는 현실환경에 가상환경을 대입한 증강현실(AR)을 넘어서고, 가상과 실재가 함께 제공되는 혼합현실(MR)을 넘어, 가상공간을 현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가상현실(VR)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매트릭스2 - 리로이드’를 보면 가상현실 세계인 매트릭스가 복제된 인간의 감각신경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면 사이퍼가 주인공 네오를 배반할 목적으로 스미스 에이전트와 들른 식당에서 바닷가재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사이퍼는 “바닷가재를 먹고 있지만 그 맛은 오렌지 맛이다”라고 말한다. 가상현실 세계인 매트릭스 안의 모든 맛은 통제되기에 누구든 두뇌의 뉴런(신경세포)으로 보내주는 신호가 정해주는 맛으로 인지하게 돼 있다. 매트릭스가 맛이라는 화학분자를 전기신호의 디지털 코드로 전환해 텔레파시나 초음파, 빛으로 두뇌의 미각 담당 뉴런에 쏘아주는 것이다. 그러니 바닷가재를 먹지만 오렌지 맛을, 피자를 먹지만 사이다 맛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컬럼비아 의대와 국립보건원(NIH)의 과학자들이 영화 ‘매트릭스’의 시나리오가 사실임을 밝혀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거나 마실 때 혀에서 다섯 가지의 기본 맛인 ‘달다’ ‘시다’ ‘짜다’ ‘쓰다’ ‘짭짤하다’를 감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혀의 수용체에서 다섯 가지의 화학분자를 전기신호로 바꿔 뇌의 시상(視床)을 통해 미각을 담당하는 피질로 보내면, 각각 서로 다른 맛을 담당하는 뉴런이 해석하고 보내주는 신호에 의해 맛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혀가 아니라 두뇌가 맛을 인지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쥐에게 ‘달다’와 ‘쓰다’를 인지하는 두뇌 피질 영역의 뉴런을 직접 활성화시키거나 침묵시키기 위해 레이저 빛으로 뉴런을 켜고 끄는 광유전자극 기술을 이용했다. 먼저 ‘달다’라는 뉴런을 침묵시키자 ‘달다’는 맛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쓰다’는 뉴런을 침묵시키자 ‘쓰다’는 맛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맛이 없는 물만 줬을 때 ‘달다’는 뉴런을 활성화시키자 ‘달다’는 맛과 관련된 반응이나 행동을 보였는데 사탕을 먹을 때와 같이 계속 핥는 것이었다. 반대로 ‘쓰다’는 뉴런을 활성화시키자 참을 수 없다는 행동 등의 맛 거부반응을 보였다. 다음에는 음식물이나 물을 주지 않아도 ‘달다’와 ‘쓰다’의 뉴런을 활성화시켰더니 ‘달다’와 ‘쓰다’에 관련된 행동을 보였다. 이는 가상의 맛이 실제의 맛과 같다는 것이다. 즉 맛의 인지는 전적으로 두뇌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는 맛을 담당하는 뉴런을 켜고 끔으로써 미각 기관과 맛에 따른 행동을 직접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상의 영화 ‘매트릭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후각의 메커니즘을 밝힌 과학자들은 200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과학·의학 분야에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올해에도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과학·의학 분야에서만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가 미각의 메커니즘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연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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