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미추홀' 연재를 마치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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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2.30)
[조우성의 미추홀] '미추홀' 연재를 마치며
<1542>
이 난(欄)의 칼럼 '미추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6년 8월 9일이었습니다. 오늘까지 셈해 보니, 햇수로는 10년, 일수로는 3.429일입니다. 횟수는 오늘로 1541회가 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인천일보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1988년 본보 창간 후 문화부ㆍ경제부 기자, 편집부국장, 객원논설위원 그리고 금년 4월 전까지 주필(主筆)로서 본보에 계속 글을 써 왔습니다. 되돌아보면, 행장(行裝)도 갖추지 못하고 떠난 길이었는만, 개인적으론 큰 모험이자, 영예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굳이 칼럼의 제목을 인천의 옛 지명인 '미추홀'이라고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의 실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인천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밝혀 적어 지역사회의 정체적 합의를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해 보자는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주 3회 연재하기로 한 첫 번째의 글은 '인천인 엘리스 씨'였습니다. 캐나다 출신 원어민 영어교사 '브래들리 엘리스' 씨의 이야기였는데, 자신이 인천 유나이티드FC를 매번 응원하면서 '인천 시민'이라는 걸 느꼈다는 소회를 소개했습니다.
▶파란 눈의 서양인조차 인천에 살면 인천인이 되는 글로벌 시대에 아직도 망국적인 지연, 학연 등에 기대어 세상을 얕잡아보는 패거리들을 넌지시 비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걸러 써야 하는 글의 주제를 생각하는 게 어느덧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본이 가져간 영종도 대포의 반환, 시 청사 이전, 인천의 자살률, 잘못된 인천의 땅이름, 자전거 세상, 영국 영사관 설계도 같은 제목들을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제게 무슨 특별한 글재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독자 여러분보다 먼저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 읽어 드린다고 자위(自慰)를 하면서, 어떤 때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자료 확인을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10년이 흘렀고, 제가 늦게 공직을 맡게 되면서 지금이 무대에서 퇴장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글 쓸 기회를 주신 본보와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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