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미래의 먹거리와 오늘의 밥그릇 타령(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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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 1.19)
미래의 먹거리와 오늘의 밥그릇 타령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얼마 전 무리한 기업 인수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때문에 스물서너 살 청춘에게 희망퇴직을 시키려는 재벌 기업이 등장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 한국의 돈 많은 사람들 80% 이상이 가업 승계자란 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체제에서 여전히 이익이 담보되는 한 인건비 감소로 재산을 불리려는 그들의 단물 빨아 먹기는 예상된 바이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는 행태다.
지난 시대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의 발전 과정에서 모든 분야에 속도와 효율은 성장을 담보하는 최고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속도와 효율의 한계를 조절하지 못한 탓에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고, 여전히 그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창조와 혁신,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자유로운 개인과 무한한 상상력이 그 뿌리이고 바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구호성 창조와 혁신이 도처에서 들리는 것은 그 방증이다. 하지만 권력과 재력의 기만적 야합은 부패한 엘리트 카르텔 사회를 근본적으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중국 쪽에서 요즘 공급측(供給側) 개혁이란 용어가 최고 지도부를 통해 빈번하게 흘러나온다. 중국 지도층이 반복하는 말에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에서 공급측 면의 전면적 개혁은 관심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충분하다.
도대체 무슨 변화를 꾀하는 걸까? 한마디로 과거의 중국 경제발전 3대 축으로 꼽았던 투자와 소비, 수출 대신에 이제부터는 기업 혁신을 장려하고 낙후산업을 도태시키며 세금 부담을 낮춰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으로 결과보다는 원인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먹거리를 만드는 데 미국처럼 다양한 창의적 신상품을 만들어 소비를 일으키고 투자에 활력을 주면서 새로운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지 꽤 오래 됐으나 아직도 제품의 질(質)이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재고가 쌓이고 웬만한 것들은 수입해서 써야 하는 구조를 뜯어 고치자는 논리로 보면 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다른 측면이 있긴 하나 엔저 효과를 극대화시켜 잃어버린 20년의 정체를 뒤집어 놓겠다는 혁신적 사고와 일본 상품의 획기적 변화를 통해 과거 이상의 일제(日製) 신상품으로 세계시장을 향해 용틀임하겠다는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대를 넘어 휴먼웨어 시대로 가겠다는 분명한 자세다. 하드웨어는 재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갖출 수 있다. 건물 같은 건 후딱 지을 수 있다. 공장 설비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도 그리 어렵지 않다. 힘이 든다면 프로그램 자체를 통째로 사다가 장착하면 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국가나 기업들은 이전 방식을 선호했고, 효과를 봤다. 이제 그것은 과거로 흘러가고 있다.
미래의 진정한 성과는 휴먼웨어에서 나온다. 변화의 물결은 그쪽으로 급속히 전개되고 있다. 물론 휴먼웨어의 성과를 보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결실을 따먹으려면 10년쯤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니 2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좀 더 기다려 돈이 쌓이고 여건이 성숙되면 그 방향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그건 세월의 문제가 아니라 자칫 낙후되고 도태되기 십상이다.
생존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할 위험이 크다. 이웃 나라들이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의 밥그릇 타령은 끝내야 한다.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스물서너 살 청춘에게 희망퇴직이나 강요하고 인건비를 줄이면 이익이 늘어난다는 그런 계산법으로 미래가 과연 있을까.
사람에게 투자하고 낡은 구조를 바꾸는 도전을 시작하지 않으면 동북아 삼국지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끝내는 저쪽에 흡수당하고 만다. 정치집단이건 기업집단이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밥그릇 타령하다가는 미래의 먹거리를 잃게 된다는 냉엄한 경고가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
현재는 내일의 과거일 뿐이다. 내일을 보려면 현재 출발선상에서 과감한 도전이 절실하다. 빠를수록 좋은 일에 태만한 자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2016년 01월 19일 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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