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90.7 MHz iFM(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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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2.14)
[조우성의 미추홀] 90.7 MHz iFM
<1536>
경성방송은 1927년 2월16일 'JODK'라는 호출부호로 개국했다. 출력 1kw, 주파수 870KHz였다. 도쿄방송이 'JOAK'였고, 경성방송은 'JODK'였다. 1924년 서울 우미관에서 공개 시험했던 11개 민간단체의 방송을 불허한 조선총독부가 세운 것이다.
▶개국 직후 경성방송은 '붐' 조성을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라디오 청취회'라는 이색모임을 개최했는데, 1927년 5월23일 인천 '애관극장'에서도 방송 상식 보급을 위한 '방송 강연회'를 열었다. 내용은 경성방송을 청취하자는 것뿐이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부산, 평양, 대구 등 전국 21개 지역에 방송국을 순차적으로 설치해 나갔지만, 인천만은 예외였다. 서울과 동일한 가청권이라는 논리였다. 그 같은 상황은 광복 후까지도 계속돼 인천은 방송 사각지대로 방치되었다.
▶그에 처음 이의를 제기한 이는 임홍재 시장이었다. 1946년 임 시장은 '인천방송국 설치'를 '중앙'에 요구했으나 서울중앙방송은 '인천부청(仁川府廳)의 시간'을 내보내는 데 그쳤다. 후임 표양문 시장의 노력도 허사였다. 그런 가운데 선교방송국이 세워졌다./1956년 HLKX가 학익동 갯벌 위에 송신 안테나를 세우고 개국했는데, 인천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우크라이나 등 대 공산권 선교가 주목적이었다. 그 30년 뒤인 1997년 10월11일은 인천 사상 최초로 '인천의 전파'를 쏜 특기할 날이었다.
▶그간 순탄치 못한 길을 걸어온 경인방송 iFM이 내실을 기하며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온 모습은 그래서 더욱 대견해 보인다. 지난여름의 '세계문화축제'도 그랬고, 11일 저녁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연 '2015 송년음악회'도 야무진 기획력을 엿보게 했다.
▶윈기범 아나운서의 사회로 열린 이날 음악회는 iFM 경인방송의 건승을 자축하는 청취자와 시민가족의 오붓한 자리였다. 모두, 지역 방송 미디어의 개척자인 90.7MHz iFM이 거듭거듭 성장해 가기를 기원하며 환호했었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2월 1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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