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제물포 야생초(野生草)(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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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2.16)
[조우성의 미추홀] 제물포 야생초(野生草)
<1537>
'손탁(Miss Sontag)' 여사는 1885년10월 초대 주한 러시아공사 웨베르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 1909년까지 25년간 활약했다. 원래 프랑스 출신이나 독일 국적으로 내한했다. 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어에 능통했고 우리말도 곧잘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항 직후부터 외교가의 꽃으로 이름을 날린 데 비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윤치호 일기(1896.7.2.)'에 "웨베르 공사 부인의 남동생인 미스터 막크의 부인되는 사람이 미스 손탁의 여동생"이라고 한 것이 유일한 기록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탁 여사는 궁내부와 러시아공사관의 연결책을 맡아 독립운동을 도운 공로로 1895년 정부로부터 서울 정동 소재 한옥을 하사받았고, 그 후 아관파천에 성공했다. 고종은 여사의 공로를 치하해 1898년 한옥을 헐고 그 자리에 양관(洋館)을 지어 주었다.
▶그녀는 방 다섯 개짜리 건물을 꾸며 '손탁 빈관(賓館)'을 열었다. 이를 "한국 최초의 서구식 호텔 영업의 효시"라고 칭하는 것은 인천의 지역사를 모르고 한 주장이다. 1885년 이전에 이미 인천에는 '대불(大佛)호텔'이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한 술 더 떠 손탁 여사가 자신의 호텔에서 고종에게 제공한 '양탕국(커피)'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도입(導入)이라고 하지만, 대불호텔의 서양식 요리가 뛰어났다는 아펜젤러 목사의 선교 보고서로 미루어 보면 그 역시 오류이다.
▶이래저래 손탁 여사가 인천과는 인연이 없어 보였는데, 최근 본보 보도에 따르면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인천에 와서 당시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야생초를 채취했고, 그 표본이 지금까지 러시아 코마로프 식물연구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한다.
▶손탁호텔도, 대불호텔도 다 역사적 기억 속에 남게 됐지만, 130여년전 인천의 산과 들에 피어있던 도라지, 싱아, 패랭이꽃들을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깊다. 향기로운 인연의 발견이자, 국제교류의 좋은 선례라 생각한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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