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박경훈(70회) 교육의 눈/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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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1.18)
[교육의 눈]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
/박경훈 전 인천국제고 교장
▲ 박경훈 전 인천국제고 교장
지난 8월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인천시평생학습관인데 지식재능기부를 할 의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요즘 어느 종편방송에서 방영한 여행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보고자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져 그들을 위한 여행영어 강좌를 개설할 계획으로 강의를 맡아 줄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교육청에서 나를 적임자라고 추천한 모양이었다.
나
는 잠시 망설였다. 40여년을 교육자로 봉직하다 퇴임한지 불과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 교단에서 수업을 한지는 제법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영문학, 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중·고등학교에서 오랜 기간 영어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에다 많은 해외여행 경험, 그리고 인천국제고 교장 등을 지내며 쌓은 다양한 국제교류활동의 경험을 살린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고, 인천에서 태어나 평생을 인천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내 고향 인천의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뜻있는 일일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제의를 수락하였다.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에 두 시간씩 강의를 하기로 하고 드디어 9월3일에 첫 수업을 하였다. 강의에 오신 분들은 모두 60세 이상이지만 놀랄 만큼 젊고 건강한 멋쟁이들이었다.
수업은 교재를 중심으로 '기내에서, 입국하기, 호텔에서, 쇼핑하기…' 등 해외여행의 전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따른 영어표현을 익히고 반복연습을 통해 회화능력을 키우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단순히 교재에만 의존하지 않고 보다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컴퓨터에 능숙한 아내의 도움을 받아 각종 영상자료를 만들어 활용했다.
아울러 매일 강의 끝에는 감미로운 추억의 올드 팝송도 한 곡씩 선정하여 가사의 뜻을 해석해 보고 문법 요소도 익히고, 동영상을 보며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예정된 두 달의 강의를 마쳤다.
일단 수업을 시작하니 옛날에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던 왕년의 실력(?)이 죽지 않고 되살아나 수강생들의 80% 이상이 개근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은 강의가 돼버렸다. 그러다보니 여행영어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강생들이 한 명, 두 명씩 늘어 수강 인원을 30명으로 늘리고 기간도 두 달 더 연장하여 연말까지 강의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현재 60세 이상으로 한 나이 제한도 풀어 보다 더 많은 수강생에게 문을 개방할 예정이다.
얼마 전에 '인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40년을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던 70세의 남성이 잘 나가는 온라인 쇼핑몰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하여 30대 여성CEO와 다른 젊은 직원들의 멘토가 되어 엮어나가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인데 그 영화에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그 뜻은 "경험은 결코 나이 들지 않는다"라는 말로 어른들이 쌓아올린 지혜와 소중한 경험들은 결코 녹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 어느 신문에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장·노년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각 구청 등에는 재능기부에 나서는 많은 '고수'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외국어부터 요리, 바느질, 목공에 피부손질까지 분야별로 없는 게 없다고 한다. 거기서 우리는 누구나 선생이 되고 학생이 된다.
나 또한 퇴임 후 그동안 못했던 공부, 독서, 운동, 취미생활 등으로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무언가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다가 만나게 된 재능기부활동을 통해 나 자신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재산이 되었다.
/박경훈 전 인천국제고 교장
2015년 11월 1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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