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생존수영'(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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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1.20)
[조우성의 미추홀] '생존수영'
<1528>
"해수욕장에 가도 헤염을 칠 줄 모르면 자미가 업습니다. 헤염을 칠 줄 모르는 사람은 잘 헤는 사람을 보고 잇지 아니할 수 업습니다. 그리고 무능을 한탄합니다." '헤염을 쉬웁게 배우는 방법'이란 기사의 전문(前文)이다.(동아일보 1928.7.19일자)
▶이어서 "물에 뜨고저 하면 다음과 가튼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며 "1.허리를 펼 일 2. 턱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얼굴에 물을 적실 일 3. 팔을 머리 압흐로 빳빳하게 펼 일 4. 숨을 드려마셔서 배를 부르게 하고 입을 다물고 코로 호흡할 일"을 알렸다.
▶그러나 개항 직후 체조가 도입되고, 1909년 '인천항 각 학교 연합운동회'가 웃터골운동장에서 개최되곤 했지만, 신식 수영은 아직 낯선 스포츠 영역이었다. 인천 최초의 '해수욕장'이 들어선 것은 한용야구단 결성보다 늦은 1923년 7월 10일이었다.
▶월미도 임해유원지의 개장과 함께 선보인 '해수욕장'은 당시 최신 시설과 최대 규모를 갖춰 인기를 모았다는 게 고로(古老)들의 증언인데, 지금의 60대들은 6·25전쟁 직후 시멘트 외벽만 덩그러니 남은 야외 풀장엘 드나들던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월미도 야외 풀장은 거리도 멀고, 돈도 들어 염전 저수지 등으로 해수욕을 다녔다. 그 중에서 가장 가깝고 편한 곳이 낙섬이었다. 숭의동 쪽에서 한참을 걸어가면 긴 뚝길 끝에 엄청 큰 원형 기름 탱크를 등에 지고 있는 저수지가 나타났다.
▶거기서 아이들은 곧잘 헤염을 쳤지만, 시퍼런 물속의 귀신에게 잡혀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들이 자식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며 늦게까지 목 놓아 울던 소리가 쟁쟁한데, 다시금 아직 세월호에 갇혀 있는 원혼들을 생각하게 된다.
▶교육부가 각급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해 나가는 한편,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에게 '생존 수영'을 가르치기로 했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두 번 다시 바다에서의 참극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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