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추억의 문구(文具)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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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0.27)
[조우성의 미추홀] 추억의 문구(文具)들
<1519>
수년 전부터 남녀노소가 제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메고 다니는 '쌕'이나 '배낭'이 서양식 봇짐이라면, 1950년대 초등학생들이 어깨에 걸치고 다녔던 '란도셀'은 일본식 '책보'라 할 수 있다. 학용품도 아직 일제 강점기 것을 답습해서 쓰던 때였다.
▶지질이나 인쇄가 형편없는 교과서와 공책 몇 권을 넣고 다녔는데도 무게는 엄청났다. 뚜껑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무늬를 눌러 새긴 국산 란도셀은 전체가 두껍고 넓적한 소가죽으로 만든 사각형이었고, 가죽 냄새가 쉬 가시지 않았다.
▶연필은 동아연필과 문화연필이 가장 유명했지만 꾹꾹 눌러 쓰면 부러지기가 일쑤였다. 잘 들지 않는 연필 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깎은 후 심을 뾰족하게 다듬어야 했다. 크리스마스 날에나 선물로 받던 '잠자리표' 연필은 애들의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영어로 'TOMBO'라고 적힌 것이 일본말로 '잠자리'였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 무렵 학생들이 연필깍지를 애용한 것은 아무리 힘주어 써도 부러지지 않던 '잠자리표' 연필의 매력 때문이었지만, 중학교에 가면서부터는 펜을 쓰기 시작했다.
▶교복도 달라졌다. 일제 때 학생들이 입었던 것과 같은 까만 교복과 모자를 쓰고, 란도셀 대신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대부분 작은 잉크병을 가지고 다닌 것은, 중학생이 되면 펜으로 노트를 써야 하는 것으로 알았던 때문이다. 펜 사용을 굳이 말리는 선생님도 안 계셨다.
▶만년필이나 볼펜은 몇몇 선생님이나 갖고 계신 귀중품이었다. 시계를 찬 선생님도 드물었던 때, 학생들은 종종 교복에 튄 잉크 자국으로 퍼런 싱강이를 벌이곤 했으나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가 팔던 '잉크 빼는 약'으로 그를 지워냈다.
▶그로부터 50여 년, '모나미'로 대표되는 우리 문구류는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다. 최근 '문구의 모험'이란 책을 읽었다. 인간의 도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문구.' 문득, 머리맡의 잉크가 얼어붙었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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