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축등문학산(祝登文鶴山)(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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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0.19)
[조우성의 미추홀] 축등문학산(祝登文鶴山)
<1516>
지난주 15일 제51회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시(市)가 실로 55여 년 만에 인천의 정신적인 상징인 문학산을 공식 개방했다. 100여명의 각 구군(區郡) 소속 풍물패와 함께 정상에 오른 유정복 시장과 많은 시민들은 벅찬 가슴으로 '역사'를 되찾았다.
▶그간 시가 기치를 높이 들어 올렸던 '인천 가치의 재발견'을 가을햇살 아래 모여 알치게 실현하는 순간이었다. 눈 아래로는 2000여년 전, 도읍한 비류와 그 백성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우리나라 제3의 대도시 인천의 웅자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문학산 오솔길 더디게 오르니/일찍이 미추가 나라를 세운 곳이네/빗줄기 지나가자 원앙 기와 자주 눈에 보이고/(중략)옛 우물에 구름이 서리니/무너진 성곽은 임진년 난리를 막아서인지/흙은 무너져 켜켜이 비늘 모양이고, 돌은 뾰족하게 닳아 있네."
▶조선조 말의 문인 이규상(李奎象)이 쓴 시 '문학산성(文鶴山城)'이 더불어 떠올랐다. 그의 아버지 이사질(李思質)이 인천부사로 있을 때인 1765년, 인천 일대를 유람하고 쓴 '죽지사(竹枝詞)' 18편 가운데 하나인 칠언율시(七言律詩)의 경관이 연상됐다.
▶멀리 서울의 북한산, 인왕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내항에서 영종ㆍ강화를 지나 격렬비도까지 굽어보는 보금자리 한가운데에 이만한 대동화합의 내 고장을 가꾸어 온 지난날의 역사에 큰 자부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와 함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지역사를 상기했다. 이규상의 시에 등장한 비류는 이주민의 도시 인천에 정착한 이주자 제1호로서 그의 꿈과 개척정신을 길이 기려야겠고, 임진년에 '문학산'을 지켜낸 백성들 또한 '인천의 구국 표상'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
▶문학산 정상에 올라가 받은 밝고 청량한 서기(瑞氣)가 내내 인천과 함께 하리라 믿으며, 고유제(告由祭)에서 밝힌 바 그대로 대대손손 오순도순 살아갈 300만 시민의 내일이 두루 평안하기를 모두 간절히 기원하였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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