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가(史家)들이 붓을 놓는다고…? (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15.10.19)
사가(史家)들이 붓을 놓는다고…?
원현린 논설실장
▲ 원현린 논설실장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같다. 지금 국사(國史)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지침이 정해지자 정치권은 이를 정쟁(政爭)의 쟁점으로 끌고 가 싸움을 벌이는 꼴이 가관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 국사학자의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라고 발언하고 나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또한 역사 문제를 놓고 학부모 간담회를 갖는 등 장외 투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
김 대표는 수치의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여야 하고, 문 대표 또한 역사문제를 장외투쟁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역사를 어찌 정치 흥정의 대상물로 삼으려 하는지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바른 역사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지던 한국사 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는 헌법 전문에서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 이제는 세계국가의 일원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때다.
하지만 국사교육 하나 놓고도 이렇게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분분한데 어떻게 세계사를 논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치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역사를 모르면 세계의 시민이 될 수도 없다. 역사는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다. 순간순간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후예(後裔)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지침이기도하다.
지금 이웃나라 중국과는 지난 1992년 양국 간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중국은 여전히 자국의 역사 확장 노력을 그치지 않고 있다.
그 한 예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하여 고대사부터 왜곡된 역사를 다시 써 나가고 있다. 일본 또한 ‘독도영유권’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한 역사관 위에서 우리의 학생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겠다.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새로운 인식을 지니자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별 진전 없이 오늘 날 까지 답보상태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역사는 과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쓰여진 오기가 있고, 일제와 친일 어용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왜곡의 역사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속히 바로잡아 나가야 할 부분이다. 역사는 사실(史實)의 역사로 기록돼야 한다. 왜곡되거나 특정 정파에 치우쳐 쓰여 진 역사는 올바른 역사, 정사(正史)가 아니다.
역사를 논하면서 우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周知)하는 이야기지만 한 번 더 인용해본다.
천(遷)은 한(漢)의 태사령(太史令)이었던 부친 담(談)의 "상고(上古)이래의 역사를 쓰라."는 유언을 받잡고 "소자 불민하오나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의 경위와 구문(舊聞)을 남김없이 논술(論述)하여 조금도 결여된 부분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천(遷)은 훗날 억울하게 궁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졌을 때 그의 벗 임안(任安)에게 보낸 서신에서 "어찌 뇌옥에 갇히는 치욕 속에 그저 빠져 있을 수 만 있겠습니까? 미천한 노복이라도 자결하고자 할 것입니다.
더구나 궁지에 몰린 내가 자결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은인(隱忍)하며 살아남아 분토(糞土) 속에 갇힌 것 같은 지금의 처지를 참고 있는 것은, 마음속에 맹세한 일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고, 이대로 죽어서는 내 문장(文章)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애석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의 이 서신 내용은 그가 살아남은 이유를 피로써 써 내려간 것이다. 사나이로서 죽음보다 더 못한 궁형을 선고받는 치욕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살아남은 소이(所以)는 오로지 <사기(史記)>라는 역사서를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일념 하에서였다.
역사학자들이 집단으로 역사 기술을 거부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가(史家)들이 붓을 꺾거나 내려놓은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필자는 일찍이 듣지 못했다. 역사가 굽어보고 있다.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제11면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