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관함식(觀艦式)(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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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0.21)
[조우성의 미추홀]관함식(觀艦式)
<1517>
우리가 군함을 보유하기 전부터 인천항은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1883년 인천항을 정식 개항하기도 전에 열강은 제집 드나들듯 입항해 무력을 과시했다. 각국 군함들은 1896년 9월 2일 고종의 탄일을 맞아 21발의 예포를 각기 쏘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금도 해군의 신(神)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도조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도 1901년 군함 6척을 이끌고 인천항에 왔고, 독일의 '가이슬러', 미국의 '레미' 영국의 '그린펠', 이태리의 '팔람보' 러시아의 '시릴' 제독 등도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가 최초의 군함 양무호(揚武號)를 인천항에 들여온 것은 1903년 4월15일이었다. 조선은 비로소 수군(水軍)에서 신식 해군(海軍)으로의 꿈을 꾸었지만, 1904년 2월9일 벌어진 '제물포해전'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밖에 없었다.
▶그 후인 1909년 10월 26일 '양무호'가 방매돼 우리나라에는 단 한 척의 군함도 없었다. 반면에 일제는 인천에서 '관함식'을 거행했다. 1868년 오사카에서 행한 최초의 행사를 본 뜬 것이었다. 일본은 그 후 1940년까지 18차례의 관함식을 치른 기록을 남겼다.
▶우리의 첫 관함식은 8·15를 기념해 1949년 8월 21일 팔미도 해상에서 편대 훈련, 실탄 포격, 관함 순으로 진행했다. 크던 작던 관함식은 주력 함정을 집결시켜 위용을 선전하는 포함외교, 동맹국과의 교류, 내외에의 홍보 등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훈련이라고 해석해 왔다.
▶최근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처음 열린 일본 관함식에 우리 구축함 대조영함이 참석했다고 한다. 미국 등 5개국과 함께했다니 양상이 달라 보이지만, 광적인 일본의 참관단 모습은 일제 때인 1936년의 원정 단체관람과 다름없어 보인다.
▶'해양굴기'를 노리는 중국과 그에 맞서겠다는 일본의 틈바구니에 높은 파고가 일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21세기에 19세기적 포함외교 시대의 '관함식'이라니! 인류가 가야 할 항로는 아직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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