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법원의 날’에 법 법(法)자를 생각하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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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5. 9.14)
‘법원의 날’에 법 법(法)자를 생각하다
/원현린 논설실장
▲ 원현린 논설실장
9월 13일, 어제가 ‘제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아마도 몇 안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날을 ‘법원의 날’로 제정한 날짜가 올해 6월 29일 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겠다. 게다가 홍보가 덜 되고 올해 달력에도 올라 있지 않아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게다.
하기야 법조를 출입한 적이 있는 필자도 4월 25일 ‘법의 날’이 있는데 이 무슨 새삼 법원의 날인가? 하고 대법원규칙을 보니 제1조에 그 목적이 나와 있었다. "대한민국 법원이 사법주권을 회복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법원의 날’을 제정하고, 사법독립과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알리며…."
이어 정의와 명칭에 대해 "사법주권을 회복한 날이라 함은 일제에 사법주권을 빼앗겼다가 대한민국이 1948년 9월13일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이양 받음으로써 헌법기관인 대한민국 법원이 실질적으로 수립된 날을 의미한다"고 기념일 제정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던 법원의 날을 전후, 우리의 사법독립 과정을 요약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1895년 4월, 우리로서는 최초의 법원이라 할 수 있는 한성재판소가 개소됐다.
그 후 12년 후인 1907년 7월 12일, 치욕적인 기유각서(한국의 사법 및 감옥사무를 일본 정부에 위탁하는 건에 관한 각서)의 체결로 우리의 사법권은 통감부 재판소에 이양됐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으나 미군정 아래에서도 조선총독부 통치하의 제도가 대부분 이어졌다. 1946년 3월, 미군정법령에 의해 오늘 날의 사법부(司法府)가 아닌 군정장관 통제하의 사법부(司法部)가 설치됐다.
1948년 5월, 과도 법원조직법의 공포로 법원행정이 대법원으로 이관되었다.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의 제정으로 비로소 행정, 입법과 함께 사법부(司法府)로 탄생을 보게 됐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사법주권을 찾은 우리는 1948년 9월13일 ‘남조선 과도정부기구의 인수에 관한 건’인 대통령령 제3호가 공포되고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일제에 빼앗긴 사법권을 되찾은 날로 가히 기념할 만한 날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사법부의 독립은 제도로서 독립돼 있다 하여 독립이라 할 수 없다. 법과 양심에 의한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원래 법(法)자의 옛글자는 삼수 변(氵)에 해치 치(廌), 아래에 갈 거(去)자로 ‘灋’를 썼다.
여기서 삼수 변은 수평처럼 평등함을, 뿔이 하나인 해치라는 동물은 이 외뿔로 시비곡직, 선악을 가려낸다는 영물(靈物)을 가리킨다. 이 같은 의미를 지닌 법을 다루는 법관이다.
이 법 글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법관이 그 몇이나 될까. 법조인 명부인 ‘한국법조인대관’에도 표지에 이 옛글자 법 법자가 큰 글씨체로 장식돼 있다. 법이라는 글자 한 자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우리 법조계다. 수치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 지 여전히 법조비리가 터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최근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 또 한 번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열린 지난 11일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사법부 내에서조차 사법주권 회복, 사법부 수립 역사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었다"고 자평했다 한다.
필자는 해마다 그 숱한 법조 수장들이 취임사나 기념사를 통해 잘 다듬어진 미문으로 법과 정의를 내세우며 각오를 다지지만 법의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질 못했다. 철저히 독립을 견지해야 하는 사법권이 금권과 권력에 흔들린다면 사법정의는 멀어져 만 갈 것이다.
사법 불신도 사법 신뢰도 모두가 법관의 자세에 달렸음을 알아야 하겠다. 법정에서 법관들이 입는 법복은 결코 가벼운 깃털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필자는 법관들을 향해 누차에 걸쳐 "법복의 무게를 알라"고 당부하곤 했다. 법관들이 법복의 무게를 알아야 진정한 사법정의가 실현된다.
한두 번 인용한 적이 있는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퇴임사가 지금도 필자의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모든 사법 종사자들은 굶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 그것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 명예롭기 때문이다."
2015년 09월 14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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