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사진계의 큰 잔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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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9.15)
[조우성의 미추홀] 사진계의 큰 잔치
<1505>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문화의 발신지였다. 인천을 통해 들어온 온갖 문물과 제도가 조선팔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축구와 야구 등 스포츠를 비롯해 우편, 전화는 물론 성냥, 비누, 사이다 같은 신식 박래품이 인천서 전파됐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신기한 새 문화는 '사진'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로 사진의 주인공이 된 이가 신미양요 때 콜로라도 호 선상에서 미 수병과 조우했던 인천 사람이요, 최초의 사진가인 황철이 활동했던 지역도 제물포항 일대였다.
▶1904년 제물포해전 당시 인천 소재 '가와이(河合) 사진관' 소속 사진사들이 우편선 '숭가리' 호 침몰 장면, 이를 지켜본 조선인, 일본군의 행렬 등을 촬영한 것을 보면, 8, 9년 앞선 김규진의 '천연당 사진관' 못지않은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1936년 조선일보 주최 사진공모전에서 지금의 중구 내동에 살던 태영호(太永浩) 선생이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연이어 정헌식(鄭憲植), 정용복(丁龍福) 선생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의 스승은 인천 사진계의 개척자인 김진근(金辰根) 선생.
▶이종화 선생의 '인천사진문화사'에 의하면, 김 선생은 1941년경 지금의 중구 경동 191번지, 옛 삼성의원 자리에서 인천 최초의 'D.P점'을 낸 장본인이다. 일본인들이 잘 가르쳐 주지 않았던 작화법에서부터 각종 세부 기술을 일일이 지도해 준 은인이었다.
▶광복 후 최초의 사진동우회는 1946년 5월에 탄생한 '제물포사진동우회'(회장 정용복)이다. 1949년엔 은영회(회장 이경성)가 출범했다. 그 무렵에 활동한 1세대 작가들을 추념케 하는 사진계의 큰잔치가 지난 토요일 오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6대 광역시 사진교류전, 중국의 자매도시인 천진시와의 교류전, 인천시 연합 사진전 등을 동시에 개최한 것이다. 모두 600점의 신선한 작품이 선보였다. 인천 예술계의 특장 분야인 사진계의 건재를 다시금 눈여겨보게 된 전시회였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09월 1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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