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으로 끌려온 종(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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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8.18)
[조우성의 미추홀] 인천으로 끌려온 종(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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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패전의 공포에 몸을 떤다. 그리고 특유의 광기를 부린다. 전쟁 수행에 힘이 부친다는 걸 절감하고, 세상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거두어드린다. 소위 '공출(供出)'이다. 내외의 '신민(臣民)'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따른다.
▶그것이 '천황'을 위하는 길이요, '애국'이라고 강요받는다. 놋쇠로 만든 밥그릇을 내놓고, 숟가락, 젓가락, 다리미, 가스 곤로, 요강에 학생복 단추까지 다 받친다. 그리고 대신 그것들을 도기(陶器)로 만들어 팔았다. 기괴한 광기가 만들어 낸 상품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태어난 지금의 중구 '경동(京洞)'에서도 일제의 최하위 전위조직인 '인천부 정경(京町) 애국부인회' 회원들이 공출로 받아낸 온갖 놋쇠들을 앞에 놓고 촬영한 서글픈 사진 한 장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쇠붙이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 집산지는 일제가 해외에 세운 두 곳의 '조병창(造兵廠)' 중 하나인 '인천육군조병창'이었다. 일제는 일용품도 모자라 중국 고금의 동전(銅錢)도 닥치는 대로 다 실어 왔다.
▶이십 수년 전, 조병창 자리에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돈이 되는 고전을 찾느라고 수백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던 진풍경도 있었다. 한나라의 '오수전(五銖錢)'을 비롯한 수많은 동전이 나왔다. 개원, 건륭, 강희, 도광통보 등이다.
▶1945년 당시 거기에 원나라 때의 커다란 철종(鐵鐘)도 있었다. 일제는 하남성의 한 절에서 은은한 소리로 중생들의 아침을 깨웠던 종까지 떼 왔던 것이다. 이경성 초대 시립박물관장이 천재일우로 목숨을 건진 종을 발견하고, 박물관 앞뜰로 모셔온 것이 1945년도 말이다.
▶8·15를 전후해 일본은 '종전 70주년' 캠페인으로 시끄럽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도 크게 강조했다. 그러나 밥그릇과 종을 녹여 만든 총칼로 이웃을 살육한 저들은 전쟁 회고와 군사물에 열광한다. 아직 광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08월 1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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