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문학산 개방(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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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8. 4)
[조우성의 미추홀] 문학산 개방
인천시가 국립 세계문자박물관 유치 성공에 이어 이번에는 인천사의 상징이자 진산인 문학산(文鶴山)의 개방을 전격 발표해 시중에 화제가 되고 있다. 광복 70년이 다 돼 가지만, 지역사회 문화계에 이만한 경사가 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명 '배꼽산'으로 불리며 모성애적 향토애를 불러일으켜 왔던 문학산에 오르지 못했던 것은 1965년 미사일 부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 후 시민의 발길이 끊기며 문학산은 점차 잊혀져 갔고, 어느 덧 산 자체가 국방부의 소유로까지 인식돼 왔다.
▶지난 50년간, 누구 한 사람 문학산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려 놓으려는 시도 역시 하지 않았던 것인데, 시가 '인천의 가치 재발견' 차원에서 재확인한 결과 소유주가 인천시이며, 기존 미사일 부대도 타 지역으로 이전해 가 국방부와 논의 끝에 개방을 성사시킨 것이다.
▶시역(市域)의 확장에 따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게 된 문학산(213m)은 2030년 전 고구려 주몽의 아들 비류가 미추홀국을 세운 유서 깊은 도읍지이며, 둘레 557m, 높이 1.5m의 문학산성은 임진왜란 때 백성들이 들어가 왜적을 물리친 구국의 현장이다.
▶시는 개방을 계기로 기념물 1호인 문학산을 국가문화재로 지정 신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기록에 의탁해 임진왜란 때 인천부사 김민선과 김찬선의 전쟁 무용담과 안관당 복원 등 주장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부사 김민선이 옛 성을 지키면서 여러 차례 적을 무찌르다가 병으로 죽자 김찬선이 이어 받아 끝까지 성을 지켰다"고들 하나, 당시 정황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사실이 단 한 마디도 기록돼 있지 않다.
▶오히려 "문학산성은 백성이 들어가 지켰으며, 김찬선은 전시에도 백성을 수탈한 탐관오리이니 파직을 명해 달라."는 지탄의 인물이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학산의 역사적 의의는 마땅히 기려야 한다. 그러나 왜곡이나 과대 포장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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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08월 0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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