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집단 결핵(結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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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5.12)
[조우성의 미추홀] 집단 결핵(結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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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동경서 유학할 때에 폐병 들린 선생에게 천문학을 배우던 생각을 하였다. 그 선생이 매양, "여러분에게 천문학자 되기는 권하지 아니하거니와 밤마다 하늘을 보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권하오." 하고 기침이 나서 타구에 핏덩이를 토하던 생각이 난다.(이광수 '무정')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됐던 1910년대만 해도 결핵은 불치의 병에 가까워 환자들이 객혈하는 모습을 쉬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결핵 퇴치는 중대한 사회적 숙제였다. 지금의 적십자병원 자리에 인천결핵요양소를 설치한 것도 오존이 많은 곳에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핵 퇴치 자금을 모으기 위한 크리스마스 실 운동도 있었다. 1907년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해주 구세결핵요양원장으로 있던 캐나다의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이 처음으로 발행했고, 1940년 추방될 때까지 9차례에 걸쳐 실을 발매하였다.
▶당시 결핵약으로는 '리켄 비타스 정'이란 것이 유명했다. "결핵에 농후한 비타민 B2 복합체"라는 문구 아래 "결핵균의 독작용을 멈추게 하고, 니코틴 과다 섭취로 인한 중독을 해소한다."고 '모던 일본' 조선판에 크게 선전했다. 그러나 광복 후에도 결핵을 좀처럼 퇴치하지 못했다.
▶1947년 11월 6일자 대중일보(大衆日報)는 "극심한 생활고와 병행하여 여러 가지 악질의 병균이 인명을 노리며 만연하고 있는데, 그 중에도 화류병과 결핵균의 박멸은 민생 보건상 최대 긴급사항의 하나"라며, 이를 검사할 '인천세균검사소'의 개소를 알리고 있다.
▶결핵 퇴치사업이 본격화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설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병 자체가 환자의 기침과 재채기 등에 노출되거나 공기 속의 균 흡입 혹은 오염된 일상용품, 식기 등을 통해 전염된다는 경로를 뻔히 아는 데도 아직 OECD 국가 중 발병률 1위이다.
▶그런 판에 이번에는 모 중학교 학생 103명과 교사 4명이 결핵에 집단 감염돼 휴교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결핵약에 대한 내성 증가와 2000년대 들어 정부가 관련 예산을 줄이고 손 놓고 있던 것이 문제를 키운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인천시립박물관장
2015년 05월 1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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