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개항장과 중국/중화DNA, ‘초한지 벽화’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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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5. 4.21)
중화DNA, ‘초한지 벽화’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우리 주변에 중국적인 것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중국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요. 아니 수천 년을 이웃하고 살아왔으니 내 것, 네 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하는 걸까요. 아직 한글보다 한자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분들이 생존해 있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제집처럼 드나드는 이들도 많으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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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중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따져 보면 우리의 한계는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차이나타운이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현실적 환경으로 중국의 세계적 변화를 꼼꼼히 따지며 들어가 보면 이런 사실은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중국이 명실상부한 G2로 자리잡으면 우리에게 득일까 실일까’라는 논의를 지켜보면서 느낀 바가 한두 가지 아니었습니다.
우선 중국의 눈부신 성장에 대해 살펴보지요. ‘국제미래 컴퓨터모델’이란 것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규모, 인구, 군사력, 과학기술 등에 가중치를 부여해 현재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힘을 산정하는데 지금은 12%로 미국의 절반이지만, 10년 후에는 16%로 미국(18%)을 턱밑까지 바짝 추격할 것이라는 수치를 내놓았습니다.
10년 후 명실공히 G2가 된 중국,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쪽에서는 강대국이 되더라도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화평굴기(和平屈起)의 자세를 견지하리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의 정책입안자들이나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한편에서는 ‘중화DNA의 부활’이 몹시 염려된다고들 합니다. 서구의 학자들이나 미국의 안보관계자들 대부분은 이쪽에 서 있습니다.
중화DNA, 역사적으로 중국은 주변국에 대한 패권 행사를 문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공산당조차 과거에 화려했던 중화민족의 영광을 부흥시키려는 주체가 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그 예로 꼽히는 것이 마오쩌둥을 비롯한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독서열이 매우 높은데, 읽는 책들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자치통감」, 「삼국지」, 「수호지」, 「손자병법」 등을 읽습니다. 중국에 관한 세계적 연구가인 하버드의 로스테릴 교수는 “그들 대다수는 최고의 독서가들인데 마르크스를 비롯한 서구의 정치사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과거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전통에서 지혜를 구하는 일은 흔하다. 그들은 국가보다 문명을 중시한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일차적으로 아시아의 맹주다”라고 하면서 중국의 힘이 강해질수록 옛 왕조시대 이웃 국가의 조공 패러다임을 되살리려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마틴 박사는 「자치통감」에서 전제적 리더심의 허실, 「삼국지」에서 도원결의와 통합·분단의 역사관, 「수호지」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의지, 「손자병법」에서 승리지상주의의 콘텐츠를 영원한 지표이자 반면교사로 받아들인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진시황의 영원한 제국에의 갈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꿰뚫어 봅니다. ‘진시황의 뛰어난 선견지명과 과감한 결단으로 천하를 얻는 법을 알았으나 이를 지키는 법을 몰랐다’는 교훈을 되새긴다는 예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영웅’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인 자객(이연걸 분)이 결정적인 순간에 십보일살(十步一殺)의 검을 포기하고 스스로 화살세례를 받는 모습은 바로 천하를 위한 선택이었고, 중국 지도자들의 진정한 역사관이 담겨 있다는 거죠.
중화DNA를 문화적으로 영상미학으로 보여 주는 뛰어난 영화감독은 ‘영웅’ 속에서 다른 일면도 신랄하게 투사하고 있지요. “대장부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유방), “자아식, 거들먹거리기는…, 저 자리는 내가 앉아야 할건데”(항우)라고 진시황의 천하순행 행렬을 보면서 뇌까린 한고조나 초패왕은 오로지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야심가일 뿐 백성들의 삶과는 무관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의지가 없는 그런 자들의 각축이 초한쟁패 시대였다는 평가지요.
요즘 중구 차이나타운에 등장한 ‘초한지 벽화’는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오락성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구정 관계자와 업자의 민낯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예술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의 상징도 아니려니와 중화DNA조차 바깥으로 밀어낸 걸 왜 개항유산이 숨쉬는 차이나타운에 세웠는지…. 지금까지 여러모로 달라지는 줄 알았지요. 적어도 벽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2015년 04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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