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상공회의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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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3.16)
조우성의 미추홀-인천상공회의소
우리나라 최대의 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는 인천에서부터 비롯됐다. 개항 초기인 1885년 인천객주회가 결성되었고, 1896년 객주회를 모체로 해 인천항신상협회(仁川港紳商協會)가 출범했다. 이들은 일본 상인에 맞서 권익 보호에 나섰고, '인명학교'를 설립하는 등 육영사업도 했다.
▶1895년(고종 2년)에 제정ㆍ공포된 '상무회의소규례(商務會議所規例)'에 따라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는 '장정(章程)'를 통해 상인의 계몽과 근대적 상업 방식에 의거한 상업 권유, 그 결과에 의해 국가 재원을 부유하게 하자는 보국 상업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상인 단체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과도적 성격을 지닌 인천항신상회사는 1905년 인천상공회의소의 뿌리인 '인천조선인상업회의소'로 전환된다. 1969년 3월 6일 창간한 '인천상의보(仁川商議報)'는 창간호 1면에 수록한 연혁에서 그 해를 창립년으로 보았다.
▶인천상공회의소가 1969년 주간 '인천상의보'를 낸 것은 인천 지역의 지방지인 경기매일신문 등 3개 사가 군부 정권에 의해 강제 통합돼 신문이 없는 시기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상의는 사회적 역할을 자임해 통합에 동조하지 않은 언론인을 수용해 불합리한 '인천 언론 암흑기'에 촛불을 켜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직 인천시의회가 결성되기 전이었던 시대적 상황에 따라 회원을 중심으로 '인천발전협의회'를 결성하고 제2독 건설, 경인선 전철화, 부평ㆍ주안ㆍ남동공단 조성 등을 정부 요로에 건의하는 한편 여건 조성에 힘써 실현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인천객주회나 인천항신상협회가 아닌 인천조선인상업회의소의 출범 연도만 따져도 인천상의는 올해로 창립 110년을 맞는다. 한 세기여 간 지역사회 발전의 축으로써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근래 여러 요인으로 전성기보다 활약이 미흡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중차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인천상공회의소가 지난 12일 이강신 ㈜영진공사 회장을 제22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고 이기성 회장에 이어 2대가 회장을 역임하게 된 '가문의 영광'을 지역사회 발전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주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주필
2015년 03월 1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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