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시 청사(市 廳舍)(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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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2.16)
조우성의 미추홀-시 청사(市 廳舍)
인천도호부가 건축된 시기는 정확치 않다. 조선 초 학자인 강희맹이 1424년에 쓴 '인천부승호기'의 객사 관련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1430년 11월 17일자의 "인천군(仁川郡)의 인가에 있는 홰나무에 벼락이 쳐 불이 이틀 동안이나 탔다"는 기록으로써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이이 따라, 최소한 1424년 이전에 이미 인천군 청사가 지어졌고, 객사 지붕의 기와에 '강희16년(숙종3년·1667년)'이란 명문이 있는 것으로 봐 숙종 때 중수(重修)됐던 것 같다. 따라서 현 문학초등교 교정의 일부 건물은 조선초 건축양식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인천사의 발원지인 문학에서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가 인천감리서(仁川監理署)란 이름으로 바뀌어 지금의 중구 신포동으로 옮겨온 것은 1883년이었다. 인천 제물포를 개항하면서 출입국, 통상, 방역 사무 등을 과거의 '부사(府使))'가 아니라 '감리(監理)'가 맡게 했다.
▶인천감리서는 전통 한옥으로 멋있게 지었는데, 국권을 강탈한 일제가 인천 주재 일본영사관을 '인천이사청(仁川理事廳)'으로 쓰면서 폐쇄되었다. 일제는 그 자리에 1933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인천부(仁川府) 청사를 신축하였고, 광복 후 인천시가 그를 재활용하였다.
▶그 후 1985년 도시계획에 따라 시가 청사를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했고, 중구청이 그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의 중심지가 옮겨지면서 중구는 공동화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시세(市勢)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市)도 협소해진 청사로 곤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최근 '청사 신축안'이 나온 모양이다. 재정 적자로 숨 한번 제대로 못 쉴 처지이긴 하지만, 이 모양, 이대로 살림살이를 할 수 없는 처지라면 그 대안이라도 시급히 모색하자는 이야기일 터인데, 부디 인천의 ' 미래'와 2세들의 ' 행복'을 위한 사려 깊은 결정이었으면 한다.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설 후, 전 시민이 겪고 있는 재정 트라우마의 1차 책임은 '정치적 선택'을 한 시 자신일밖에 없음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도 특단의 도시재생사업이 될 '시청 도화지구 이전안'은 재고해 볼 팔요가 있다고 본다.
/주필
2015년 02월 1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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