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을 지킨 백성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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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2.23)
조우성의 미추홀-인천을 지킨 백성들
설날, '징비록'을 다시 꺼내든다. 조선 선조 때의 중신 유성룡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참절비절했던 왜란을 기록한 것을 1647년에 펴낸 전기(戰記)인데, 하 수상한 동북아의 정세와 국내적 혼란 속에서 우리가 어찌 처신해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재독하기로 한 것이다.
▶서애는 서문에서 이르기를 "매번 지난 난중(亂中)의 일을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알지 못해 왔다."며 "비록 볼 만한 것은 없으나 모두 당시의 사적(事蹟)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고 밝혔는데, 그 참상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인천 일대는 왜적의 온 부대가 나와 날마다 분탕질을 하고, 더러는 밤을 타 습격해 살아남은 백성들이 흉적의 창칼에 다 죽어갈 형편입니다. 신이 용렬한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한 지방을 지키며 적이 우글거리는 속에 방황하자니 눈물만 나오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경기좌도 감찰사 성영이 선조 26년 3월 24일 눈물로써 임금에게 아뢴 대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인천부사 김민선(金敏善)의 후임 김찬선(金纘先)은 어전(魚廛)을 세워 일신의 사욕을 채우고, 거리낌 없이 수탈을 일삼아 백성들이 그를 파직해 줄 것을 청하고 있었다.
▶실록 선조 25년 8월 7일자에는 무신 김경로가 "인천의 적은 유옥(兪沃)과 접전하였는데 인천 군사 42명이 패하여 죽자, 인천 백성들이 서로 울면서 "수령(守令)이 실책하더니 지금은 또 패배하였다"며 부사의 부패한 정사와 장수들의 졸전에 울분을 토했다고 전한다.
▶무신 이정암은 선조 29년 11월 13일 "인천 산성과 수원 독성에서는 그곳에 사는 백성들이 들어가 지켜 적이 감히 침공하여 함락하지 못하였다."고 아뢰었다. 그간 승전의 주인공이라 칭송해 오던 김민선에 대한 전승과 추증에 관한 기록은 실록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왜적에 맞서 싸워 인천을 지켜낸 것이 인천 백성들이었음을 실록은 분명히 밝혀 후세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설날 아침, 우리가 그 후예인 것을 커다란 지역적 자긍심으로서 되새기게 된다. '징비(懲毖)'하며, 내일을 굳건히 모색해야겠다.
/주필
2015년 02월 2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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