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개항장 포구 상징성 '제물포구'로 고쳐야(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5. 3. 4)
[인천 정체성 찾기] 구(區) 이름 바꿔야 한다-(2)중구
개항장 포구 상징성 '제물포구'로 고쳐야
/이원규 소설가
오늘의 인천 중구는 중부가 아니라 서쪽 끝이다. 1962년 인천시는 여러 개 출장소로 나눠 행정을 효율화했다. 다운타운 지역은 방위기준으로 획정하고 중부, 동부, 남부, 북부로 출장소명을 붙였다. 중부출장소는 이곳이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시청이 자리잡고 있어서 붙인 명칭이었다. 그 후 인천시가 빠르게 확장되고 1968년 구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안이하게 이 출장소명들을 지명으로 이어갔다. 그리하여 오늘의 난센스가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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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중구를 대체할 지명으로 무엇이 좋을까. 우선 조선시대 지명을 살펴보자. <대동여지도>를 보면 다소(多所), 제물(濟物), 자연도(紫燕島), 용유도, 무의도, 월미도 등 지명이 보인다. 다소는 원인천인 현 관교동에 있던 인천부 소속의 다소면을 의미한다. '여러 곳'이라는 말뜻을 갖는데 오늘의 중구와 동구권역까지 망라했다. 오늘의 중구는 이 다소면의 선창리(船倉里)였다.
제물은 제물포(濟物浦), 제물량(濟物梁)을 뜻한다. 제물포는 현재의 인천역 뒤보다 더 남쪽, 파라다이스호텔 아래 있던 포구였다. 북성포와 성창포라는 포구도 있었으나 제물포가 대표화되었다.
제물량(濟物梁)은 인천 앞바다이다. '량'은 육지 사이 혹은, 육지와 섬, 섬과 섬 사이 해협을 의미한다. 남해안의 울돌[鳴梁명량], 노돌[露梁노량], 통영의 사량(蛇粱), 견내량(見乃梁) , 칠천량(漆川梁), 등이 그렇다. 제물량이라고 한 것은 육지와 월미도 혹은 영종도 사이에 놓인 해협이어서 붙여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개항 이전 통상을 강요하며 나타난 군함들이 가진 지도에 인천항이 '제물포'라고 적혔고 그것이 인천 전체를 대표하는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편 제물량, 제물포 일대는 내국인들에게 원인천인 관교동 일대와 구분하여 '제물' 또는 '제밀'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다. 서곶에서 보낸 필자 유년시절, 고희가 넘는 할아버지들은 '제밀에 장보러 간다' 하셨다.
답은 분명하다. 중구는 제물포로 고쳐야 한다. 광복 후 미군정 기간에 인천을 제물포시라고 부른 시기가 있었고, 제물포고교는 이 나라 최고의 명문으로 인천의 명예를 한없이 끌어올렸으니 인천을 대표하는 지역이라는 뜻도 함축된다. 다소, 선창, 성창, 북성 등의 재래지명이 있었긴 하나 어색하다. 개항 이후 부내면(府內面)이라 했는데 그걸로 갈 수도 없다.
2015년 03월 0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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