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봉초(封草)(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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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3. 6)
조우성의 미추홀-봉초(封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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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어원설은 대충 이렇다. 원산지는 미주인데, 1816년경 국내에 들어왔다. 포르투갈 인들이 원주민의 말을 인용해 '토바코(Tobacco)'라 일컬었고, 일본에 들어가 '타바코'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선 '담바고', '담바귀'가 '담배'로 정착했다.(김성환·'고바우의 잡학백과')
▶개항 전에는 엽연초를 담뱃대에 담아 피다가 신식 담배가 등장하면서 끽연 풍속이 달라졌다. 궐련의 수입이 증가하자 조선 정부는 1894년 국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긴 담뱃대의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궐련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러시아 대장성·'구한말의사회와 경제')
▶그 같은 수요에 부응해 인천에 현대식 담배 공장을 세운 것이 1901년 5월이었다. 그리스 인 필립 반데라스가 미국인 자본가 두 사람과 합자해 제물포에서 '동양연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외국산에 밀려 고전하다가 1903년 11월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직후 미국인 중 한 사람이 합자회사를 재조직해 현 선린동에 제물포연초주식회사를 신축하고, 담배를 만들었다. 판권을 가진 일본인 오쿠타(奧田)가 인천산 담배를 전국 각지에 공급했는데, 한일합방 후 연초전매법이 공포되면서 이 회사도 문을 닫았다.
▶개항 직후의 궐련은 모두 수입품이었다. 미제 올드골드(Old Gold), 히로(Hero), 스타(Star), 영국제 스리캣슬(Three Castle), 중국제 칼표(Pirate) 등이 있었고, 이태리 고르돈(Gordon) 사의 파이프가 들어와 멋쟁이들 간에 속칭 '골통 담뱃대'가 유행했다.(신태범·'개항후의 인천풍경')
▶시골 노인들도 담뱃대 대신 파이프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불로연'이나 '희연' 등을 담아 피웠다. 이를 '봉초'라 하는데, 50년대 말 배다리 시장에서도 할머니들이 소쿠리에 가득담은 유사 '봉초'를 팔았다.
▶피다버린 꽁초에서 궐련지와 필터를 떼 내고 뒤섞어 팔았던 잡종 담배였다. 최근 애연가들이 담뱃값 인상을 성토하자, 정부가 노인을 위해 60년대의 '풍년초' 같은 '봉초'를 싸게 공급하겠다고 해 또 공분을 샀었다. 그런데 이번엔 국회까지 담뱃갑 경고 그림의 삽입을 부결시켰다. 이래저래 국민만 열 받고 있는 요즈음이다.
/주필
2015년 03월 0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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