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조선사' 문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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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1.16)
조우성의 미추홀-'조선사' 문제
(1275)
"일제는 대한제국 강점 후 한국사·한국어·한국지리에 관한 지식을 위험하게 보았다. '조선총독부 관보' 등에는 총독부에서 판매를 금지시키거나 압수한 서적의 목록이 나오는데, '초등 대한역사', '대동역사략' 같은 역사서 등이 들어있었다."(이덕일 지음 '근대를 말하다')
▶이 시기(1911~1922)에 한국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교과를 각급학교에서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역사의식과 민족의식, 나아가 국가의식을 말살시키려 하였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에게 예속의식을 조장시켜 일본인화 하려했다.(정재철 지음 '일제의 대한국신민지교육정책사')
▶예를 든 두 저자의 기술은 1910대 이후 일제가 식민정책의 일환으로써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다루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여자고등보통학교 규칙 제14조'는 일제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본방(本邦)의 역사로 하고, 특히 우리나라(일본)의 국체와 민정을 밝히는 데 힘써야 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 '황국사관'을 주입시키려 했다.
▶따라서 조선민족의 열등성,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임라일본부설' 등을 통해 조선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급급한 반면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정인보의 '조선사연구' 등을 발행금지나 폄하하였다.그러는 한편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한 총독부는 1921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 규정'을 공포했다. 우리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뜯어고쳐 그를 통치 자료로써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1925년 6월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었고, 1928년 12월에는 육당 최남선도 위원으로 가담하였다.
▶이때 정인보 등 한국인 사학자들은 명월관에 모여 "최남선은 일본 제국주의에 매수되어 이미 죽고 없다"며 조문을 읽고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출발부터 정체를 드러낸 '편수회'는 1938년까지 거짓과 오욕으로 점철된 '조선사' 35권과 조선사료총간 등을 펴냈던 것이다.
▶본보가 최근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등이 추진 중인 '조선사' 번역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동화정책의 이면을 몰라 번역하기로 했다"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주필
2015년 01월 1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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