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호랑이보다 사나운 것(퍼온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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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5. 2. 2)
호랑이보다 사나운 것
/원현린 논설실장
어느 날 공자(孔子)가 수레를 타고 제자들과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 여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자 일행이 가던 발길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니 길가의 풀숲에 무덤 셋이 보였는데 한 여인이 바로 그 무덤 앞에서 구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용맹하기로 유명한 자로(子路)에게 가서 그 연유를 알아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자로는 여인에게 다가가서 무뚝뚝한 목소리로 우는 까닭을 물었다. “부인, 당신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상당히 슬픈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인 일로 그다지 슬피 우십니까?”
여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랍니다. 수년 전에 저의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는데, 지난해에는 남편이 잡혀 먹혔고, 그리고 이번에는 저의 자식까지도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습니다.”
자로는 여인을 위로하며 의아한 듯 말했다. “그렇게 무서운 곳이라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살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당하거나 부역을 강요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못된 벼슬아치들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도 없기 때문에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로에게서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혹(苛酷)한 정치(政治)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것을 명심하라.”
춘추시대 말 공자의 고국인 노(魯)나라 대부 계손씨(季孫氏)가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은 일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가정맹호(苛政猛虎)’라는 한자성어의 유래다.
‘13월의 보너스’라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근로소득 직장인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는 현 정부다. 증세 없다던 정부가 세제 혜택 축소로 사실상 증세를 해 13월의 상여금이 ‘세금폭탄’으로 둔갑돼 서민가계에 떨어진 것이다. ‘13월의 분노’, ‘13월의 공포’ 등 전에 없던 신조어가 속출하고 있다. 세정의 문란은 급기야 봉급자들의 엷디 엷은 유리지갑까지 노리는 데 이르렀다.
조선시대 ‘삼정의 문란’을 보는 듯하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계급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농민(農民), 공장(工匠), 상인(商人)들에게는 국가 재정의 기초가 되는 세역(稅役)이 부담됐다.
조선시대 국가재정의 3대 요소, 즉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에 세금을 부과하는 전정(田政), 장정이 직접 군역을 치르는 대신 군포를 내는 군정(軍政), 빈민구제책으로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기에 환수하는 환곡(還穀)이 있었다.
하지만 당초 취지를 크게 벗어나 이 삼정의 제도가 문란해졌다. 전정의 문란으로는 진결(황폐한 땅이나 미경작지 땅에 징세), 은결(토지대장에 기록되지 않은 땅에 징세), 백지(공지(空地)에 징세), 도결(정액 이상의 세를 징수) 등으로 백성들은 잠시도 영일이 없었다.
또한 군정의 문란으로는 족징(도망자나 사망자의 체납분을 친족에게 징수), 인징(도망자나 사망자의 체납분을 이웃에게 징수), 황구첨정(어린이를 장정으로 취급해 징수), 백골징포(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부과해 살아있는 식구가 부담) 등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농민들의 뼛골까지 빼내었다.
삼정 중 환곡의 문란이 가장 혹독했다. 이에는 늑대(필요 이상의 미곡을 강제로 대여하고 이자를 받는 것), 반작(허위 장부를 만들어 대여량을 늘리고 회수량을 줄이는 것), 가분(저장해야 할 부분을 대여해 이자를 받는 것), 분석(쌀에 겨를 섞어 늘려서 대여해 이자를 사취하는 것), 허류(창고에는 하나도 없으면서 장부에는 있는 것으로 기재하는 것) 등의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농민을 수탈해 갔다.
이 같은 무리한 세금 징수가 농민의 저항을 가져온 것은 당연했다. 이 같은 조세제도 문란의 결과는 백성들의 초근목피 연명으로 이어졌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국가도 재정 없이는 경영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납세는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헌법은 제38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이어 제59조에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 조세법률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조세의 원칙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또다시 문란해지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유리지갑, 기업가 금고인가. 신(新) ‘조세의 원칙’이 ‘유전무세(有錢無稅) 무전유세(無錢有稅)’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15년 02월 0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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