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주필-충칭을 다녀와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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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12.17)
조우성 본보 주필-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인천의 자매도시, 충칭을 다녀와서
상해에서 중경까지 … 광복, 그 날을 기다리며
▲ 충칭시 추용로 37호에 소재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 북신구에 위치한 정원공원인 '원박원'에는 인천시가 제공한 인천대교 모형물이 있다.
▲ 본보 조우성 주필이 충칭우전대학 언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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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임시정부
1940년 9월17일 한국광복군 창설 등
임시정부 역사상 가장 활발한 활동지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조속한 복원을
●충칭우전대학
1950년 개교·면적 70여만m 교육타운
학생 2만4000·교수 1600명 교내생활
통신·정보산업 분야 전국적인 명성
●제팡베이 거리
해방탑 우뚝 솟은 공산당 혁명 사적지
백화점·형형색색 조명 … 자본유입 실감
중국 서남부의 유일한 직할시인 충칭시. 인구가 대한민국의 반이 넘는 무려 3100여만명이고, 땅덩이도 충청북도를 뺀 것과 맞먹는다. 첫 인상은 한 마디로 '크다'였다. 거리도, 강도, 빌딩도 다 컸다. 필자를 초청해 준 충칭우전대학교도 교내 셔틀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큰 나라 중국 안의 또 다른 큰 도시 '충칭'이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4시간 거리. 1919년 4월21일 민족지도자들이 인천 만국공원에서의 한성임시정부 선포 이후 상해를 거쳐 항주-진강-장사-광주-유주-기강을 거쳐 이곳 충칭에 이른 항일 독립운동의 유적이 있는 곳이요, 인천시의 자매도시라는 생각이 미치자 난생 처음인 충칭이 가깝게 느껴졌다.
인천과 충칭을 오가는 비행기는 생각보다 많았다. 주 11편이나 된다. 아시아나와 중국국제항공사가 부지런히 여객을 나르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3시55분 인천을 출발한 중국국제항공 C400편 보잉737기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인천과 충칭은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던 것이다.
충칭국제공항은 끝이 안 보이는 활주로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공항 건물은 도시의 크기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대학에서 보내온 차를 타고 40분을 달리는 동안, 길가에 이어진 풍광은 여느 나라 대도시와 다를 바 없는 듯 싶었다.
1950년 충칭 남안(南岸)에서 개교한 충칭우전대학은 교육 타운을 이루고 있었다. 교사 면적만 70여만m, 재학생 2만4000여명, 교수 1600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학생들의 기숙사, 와 교직원 숙소, 교수 사택이 모두 대학 안에 있는 것이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었고, 대학에서 직영하는 호텔 역시 교내에 있어 필자도 그곳에 머물렀다.
여장을 풀고, 배해영 초빙교수 내외, 대학 외사처 직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학교 정문 앞 '대학생 거리'를 둘러봤다. 인하대 후문 풍경과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우리의 포장마차 비슷한 '꼬치구이' 수레가 죽 늘어서서 연기를 피우며 대학생 손님들을 맞고 있는 게 이색적이었다.
이튿날, 일정이 빡빡했다. 오전 9시 대학 본관 귀빈실에서 류옌빙(劉宴兵) 부총장을 만나 학교 소개와 타국 대학과의 자매결연 실정, 한국 유학생의 현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10시30분부터 학교역사 전시관을 관람했다.
전시관은 이 대학이 통신산업 및 정보산업 분야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언론, 경영, 법학, 약학, 예술, 체육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종합대학임을 각종 사진과 자료, 문서, 실체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 2시30분, 예정되었던 언론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필자의 특강이 언론학과 미디어실에서 열렸다. 주제는 '언론의 문장과 한중일의 소통'이었다. 필자는 사례를 중심으로 3시간 가까이 강의했다.
주천(周泉) 씨의 유창한 통역으로 별 어려움 없이 의사를 전달했는데, 한글의 우수성, 한중일 한자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3국 공통한자 지키기, 붓글씨 교육의 부활 등에 대해서 학생들은 공감하는 눈치였다. 학생들의 질문이 다양해 예정을 넘겼다.
이튿날 오전, 배해영 초빙교수의 안내로 중칭시 유중구 연화지 38호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민족 지도자들이 만리타향 이곳까지 와 독립에의 꿈을 실현하고자 분투했던 유적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임시정부 27년 역사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이 충칭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1940년 9월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여러 독립 세력을 통합해 연합정부를 구성한 점과 1914년의 '대일선전성명서' 발표와 1944년의 국내 진공작전 추진 등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장면들이었다. 다섯 채의 건물로 이뤄진 청사는 주석 판공실을 위시해 외무부 장관실, 국무위원 집무실, 임시 의원원 회의실 등이 있었다.
임시정부 청사 직원 오람 씨의 안내로 찾아간 충칭시 추용로 37호에 소재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자리도 감회를 깊게 했다. 건물은 옛 그대로이나 현재 상가가 들어서 있어 매입 후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양국 정부가 속히 이를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점심시간에는 모처럼 한국 식당 '리아'를 찾았다. 이곳에서 귀한 이들을 만났다.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민 종합 정보지 '서남저널'을 9년째 내고 있는 윤세영 발행인과 인천시가 지난 5월 충칭시에 파견한 상주 공무원 김인수 씨를 만났다. 충칭시과 인천시의 교류 최일선에 일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충칭의 가능성에 착안해 인천이 더욱 더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배해영 초빙교수가 한 개 층을 모두 운영하고 있는 대학 내 Siko 빌딩 17층 GIS연구소에서 한국 유학생들과의 환담회를 가졌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국제화시대의 유학의 중요성, 어학 능력의 효용성 등을 강조한 후 독서가 대학생활 전반은 물론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의응답을 나눴다.
12월6일 충칭시 일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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