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작약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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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12.26)
조우성의 미추홀-작약도
(1267)
1866년 10월11일(음), 병인양요 때다.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Roze)가 천주교 박해사건에 대한 보복차 기함(旗艦) 프리모게(Primauguet) 호 등 7척의 군함을 거느리고 물치도(勿淄島) 해상에 나타났다. 강화부를 함락하고, 외규장각 등을 약탈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1871년 6월, 군함 5척과 병사 1230명을 이끌고 초지진, 덕진진 등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른바 신미양요를 일으켰던 미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Rodgers)도 물치도를 함대의 정박지로 택했다. 그는 광성진 전투에서 의외의 피해를 입자 물치도로 돌아와 철수했다.
▶이들은 남의 나라 섬 이름을 제멋대로 불렀다. 프랑스는 타고 온 배이름을 따 '보아제'라 했고, 미국은 '섬에 나무가 많다'고 해 '우디 아일랜드'라 불렀다. 운양호사건 때 물치도 앞의 영종진을 초토화하고 살육을 자행한 일본인들은 강점기 때 이 섬을 '작약도'라 불렀다.
▶말인즉, "멀리서 보면 작약꽃 봉우리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인 것이라지만, "한강에서 내려온 물이 이 섬을 치받는다는 뜻을 음차해서 물치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최재용 지음 '월미도가 달꼬리라구?')는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에도 한결같이 '물치도'였다.
▶원래 영종진에 속했던 '물치도'의 이름이 '작약도'로 굳어지면서, 개인의 사유지로 변했다. 광복 후에도 동립산업, 몇몇 사업가, 진성토건 등으로 주인이 시시종종 바뀌는 기구한 운명을 겪어오더니 어느 틈엔가 시민들 사이에서조차 잊혀진 섬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하운 시인은 '인천여고 문예반과'라는 부제가 달린 시 '작약도'에서 "작약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에/소녀들이 작약꽃처럼 피어//갈매기 소리 없는 서해에/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소녀들의 바다는/진종일 해조음만 가득찬 소라의 귀(하략)//라며 작약도를 노래하기도 했다.
▶이름이 걸리지만, 그러고 보니 인천 사는 사람치고 소싯적에 작약도에 한번 놀러가 보지 않은 이가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시가 이 섬을 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성공해 시정에 다소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주필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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