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양(羊)(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4.12.31)
조우성의 미추홀-양(羊)
(1269)
갑골문을 보면, '양(羊)' 자는 양의 머리와 뿔 그리고 두 귀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그린 상형자임을 쉬 짐작할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머리와 뿔은 물론 다리와 꼬리의 모양까지 다 그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머리 위의 뿔도, 몸통 아래의 꼬리도 보이는 듯싶다.
▶생김새야 어쨌든, 양은 예로부터 속과 겉이 여일한 '착하고 순한 자'의 비유로서 우화 등에 등장한다. 남의 목숨을 빼앗는 치명적 생체무기는 지니고 있지 않다. 입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오순도순 살지만, 늑대나 호랑이 등 맹수를 피해 무리지어 사는 습성이 있다.
▶패션 감각은 무디다. 한결같이 두툼한 '메리노 털코트' 차림이다. 용모가 거의 비슷해 정신 차리지 않으면 헤아리기도 어렵다. 서양의 양치기들이 번번이 숫자 세기에 실패해서인지 '양'을 뜻하는 단어 'Sheep'은 세나 마나 같다는 건지,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지 않고 쓴다.
▶군집성이 강한 양의 사회는 보기보다는 평화롭지 않다. 그들 사이에 숨어든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자나깨나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양인 줄 알았던 늑대들에게 순진한 양들은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 캄캄한 밤중에 희생된 양들은 동서에 부지기수였다.
▶그 현장을 목도한 일군의 양들은 일찍이 까마득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 산양(山羊)이 되었다. 한 번 발을 헛디디면 그것으로 끝나는 천인단애이지만, 거기서 풀을 뜯으며 하늘 가까이에 사는 걸 긍지로 알면서 늑대에 쫓기고, 양치기에 끌려 다녔던 옛일은 잊지 않는다./"저/작은/산양들//배고픔도 잊은 채//하늘의/풀 한 포기/바라보면서//메아리조차/처참히 떨어져 죽을 것 같은/아득한 절벽을//건너/가고/있다./('산양' 전문) 필자가 30대 중반에 쓴 단편 졸시(拙詩)인데, 새삼 읽어보면서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지난날을 오늘 되돌아보게 된다.
▶역시 인생은 '일장춘몽, 화무십일홍'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100년을 살 것처럼 산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 호랑이 탈을 쓴 양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인즉, 높은 산에 사는 양들의 모습이 곱고 아름다운 새해 아침이다.
/주필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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