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양(羊) 재론(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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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1. 5)
조우성의 미추홀-양(羊) 재론
(1270)
양의 조상은 지중해의 무플론(mouflon), 중앙아시아의 아르칼(arkal),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의 몬타나(montana) 등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생소한 이름들이다. 가축화한 것은 기원전 6000년경 우랄알타이족일 것이라고 추측하나, 언제부터 선조들이 양을 키웠는지는 모른다.
▶중국의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가 먼저 들어왔는지, '양'이 먼저 들어왔는지는 모르나, 우리가 '양'을 일본에 전해 준 것은 확인되고 있다. 일본 '스코이(推古)' 왕 시대의 문헌은 "양은 백제로부터의 선물이었다."고 적고 있다. '칠지도(七支刀)'만이 아니라, 가축도 전했던 것이다.
▶그 양의 역사는 슬프게 시작된다. 제나라 선왕(宣王) 때다. "왕이 새로 주조한 종에 동물의 생피를 바르는 의식 때문에 희생(犧牲)으로 선택된 소가 서러운 듯 끌려가는 것을 보고, 죄도 없고 불쌍해 양으로 교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한자의 지혜', 遠藤哲夫 지음, 講談社 간)
▶이로써 '양으로써 소와 바꾼다'는 말이 있게 됐는데,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대신 쓰느 일을 이른다. 맹자에 나오는 '이양역우(以羊易牛)'가 그것이다. 어쨌거나 양은 희생 동물로써 소와 같이 이용되었는데, 우아한 자태와 맛있는 고기 때문에 '속죄양'이 됐던 것 같다.
▶고대 어느 나라에서나 신에게 바치는 봉물은 야채와 과일, 어패류, 고기 등인데, 어느 것이나 완숙하고, 모양이 큰 것을 선호했던 것이 통례였다. '양(羊)' 자와 '대(大)'의 합성어인 '미(美)'자는 그러니까 신에게 바치는 몸집이 크고, 맛있는 고기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여쁘다'는 뜻으로 발전해, 한자어에서 '미인(美人)'은 미모의 여성을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조선시대 문호 송강 정철이 지은 '사미인곡(思美人曲)' 속의 '미인'은 임금을 가리켰다. '미인'은 한때 중성적인 언어였지만, 오늘날에는 온순하고, 평화로운 인상을 준다.
▶'양' 자가 들어간 한자는 흉한 것이 거의 없다. '을미년'이 상서로울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논어에 "군자는 '의(義)'에 민첩하고, 소인은 '이(利)'에 민첩하다"고 했다. 군자의 마음 속에 양을 기르고, 소인은 칼을 숨기고 있음도 상기하자.
/주필
2015년 01월 05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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