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문방구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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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12. 5)
조우성의 미추홀-문방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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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라는 단어가 '문방사우(文房四友)'에서 왔다는 것은 쉬 알 수 있다. '문방'은 곧 '서재(書齋)'라는 뜻이니, 전통적으로 서재에서 사용하던 종이, 붓, 먹, 벼루 네 가지를 가리켰는데, 후에는 글쓰기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용구를 모두 포함하여 '문방구'라고 칭하였다.
▶옛날의 문방구는 기존의 사우 외에 화선지를 넣어두는 지통(紙筒), 평소 붓을 걸어두는 필가(筆架), 글씨를 쓰고 난 다음 붓을 씻는 필세(筆洗), 화선지가 날리지 않게 지질러놓는 문진(文鎭)과 연적, 묵갑(墨匣), 서판(書板) 등이 있었는데 세련된 문방 취미의 전통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필통들은 격조 높은 애완품으로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고, 크고작은 고묵(古墨)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옛 모습과 향기를 간직하고 있어 애장품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개화기 이후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아 실용위주의 도구로 바뀌었다.
▶화선지 대신 서양 종이가 쓰이고, 붓 대신 연필, 펜, 만년필, 볼펜 등 필기구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공책, 지우개, 자, 가위, 칼, 분도기, 콤파스 등의 기호, 도면을 그릴 수 있는 학용품과 잉크, 풀, 테이프. 도장, 철끈, 스테플러, 계산기 같은 사무용품까지도 이에 포함시킨다.
▶인천의 소문난 '문방구점'으로는 지금의 중구 경동에 있던 문운당(文運堂)과 희문당(喜文堂)을 쳤다. 문운당은 처음으로 운동기구를 취급해 눈길을 모았고, 희문당 주인은 어린이 손님들에게 당시로는 드물게 존댓말을 쓰며 잉크 습지, 지우개 등을 나눠주어 유명했다고 한다.
▶6·25전쟁 직후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자는 창영학교 앞의 '보신당'이 제일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김호순 자전거포'의 자전거를 빌려 탔다가 보신당 유리좌판으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경을 쳤던 일도 있는데, 문방구는 물론 연, 팽이, 구슬 등 장난감이 없는게 없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동구 창영동 일대에는 문방구 도매점들이 운집해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문방구점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학용품 무상지원, 대형마트 공세 등 여러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동아연필, 파이롯 잉크 시대가 그리워진다.
/주필
2014년 12월 0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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