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문화상 시상식(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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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12.12)
조우성의 미추홀-문화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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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장 가운데 문화예술에 대해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한 분은 1954년도에 취임한 김정렬 시장이라 꼽는다. 전후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는 데 앞장서서 창송을 받았는데, 우리가 부르고 있는 '인천 시민의 노래'도 그때 만들었고, 경기도학생백일장도 그때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천문화원 개원, 인천시사편찬위원회 발족 등 굵직굵직한 문화의 씨앗을 뿌렸고, '인천시문화위원회' 규정을 제정함으로써 '인천시 문화상'을 제도화했다. 그해 12월 마침내 제1회 인천시문화상을 시상해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전통을 세웠다.
▶제1회 수상자는 3개 부문에 한해 시상했다. 수상자는 최기섭(학술), 최성진(음악), 정용복(체육) 세 분이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분들이겠으나, 당대 지역사회에서의 세 분의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후의 수상자들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이끌며 큰 업적을 남겼다.
▶초창기 수상자로는 동양 서예계의 거장 검여 유희강 선생, 동정 박세림 선생,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한 박영성 화백, 판화계의 대가 김상유 선생, 사이클의 김호순, 레슬링의 장창선, 투포환의 백옥자 선수,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 등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천시가 '문화상' 시상식을 각종 합동 시상식에 끼워 넣어 격을 크게 떨어뜨렸고, 부산, 대구 등이 별도의 운영위를 조직해 500만원의 상금을 주는 데 반해, 일체의 상금을 마련치 않아 문화예술계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켰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반면에 시민의 혈세로 운용되는 '인천문화재단'은 서울 지역에서 시행하던 상을 지역적 합의도 없이 가져온 일이 있는데, 그 부상이 자그만치 1000만원이나 돼 '시 문화상'과는 현격한 격차를 보여주었다. 일의 경중과 선후가 뒤바뀌어 버린 이상한 결과였다.
▶제32회 인천시문화상 시상식이 11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비록 상금은 없었지만, 시상식은 과거와는 달리 높은 품격을 보여주었다. 시장과 시의회 인사들이 두루 다 참석해 하객들과 함께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모처럼 보는 흐뭇한 장면이었다.
/주필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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