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기문(70회) [월요프리즘]/신숙주와 신말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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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4.11. 3)
신숙주와 신말주
/이기문 변호사
▲ 이기문 변호사
모처럼 국내여행을 했다. 주로 호남지방을 다녔다. 그 중에서도 순창의 귀래정이 기억에 남는다. 귀래정 건축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카 단종의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을 향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둘로 갈라졌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옹호하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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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있다. 수양의 찬탈을 두고 형제가 갈라진 사건이다. 신숙주와 신말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공조참판이었던 신장(申檣, 1382~1433)은 신맹주(申孟舟), 신중주(申仲舟), 신숙주(申叔舟), 신송주(申松舟), 신말주(申末舟) 등 5형제를 뒀다. 그런데 형제의 사고는 너무나 달랐다.
수양대군과 그의 가장 핵심적인 신하가 되는 신숙주의 만남은 조선의 역사에 한 전환점이 된다. 실록은 세조와 신숙주의 만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종은 1452년 5월 18일 즉위하는데, 수양대군이 그해 8월 10일 신숙주를 만나는 장면이 실록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8월 10일 수양대군이 정수충(鄭守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신숙주가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됐는데, 이때 수양대군은 “신수찬(申修撰)”이라고 부르며, 신숙주를 불러 세웠다.
수양대군은 그날 신숙주를 집으로 초대해서 술을 마셨다. 그때 신숙주는 수찬이 아니라 직제학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신숙주를 수찬으로 불렀던 점을 짚어 보면, 수양대군이 그 전부터 이미 신숙주를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눴다.
수양대군은 신숙주에게 “옛 친구를 어째서 찾지 않는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지 오래였다. 사람이 다른 일에는 목숨을 아끼더라도 사직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신숙주는 “장부가 아녀자의 손 안에서 죽는다면 ‘집에서 세상일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만합니다”고 답했다.
수양대군은 즉시 “그렇다면 나와 함께 중국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수양대군은 그해 9월 10일 고명 사은사로 가겠다고 나섰고, 나흘 뒤 사은사 서장관으로 신숙주를 임명해 두 사람은 베이징을 동행하게 됐고, 베이징을 다녀오면서 신숙주는 수양의 심복이 된다.
1453년 4월, 수양이 명나라로부터 돌아오면서 수양의 거사 계획은 급진전되고, 신숙주는 한명회 등과 함께 수양의 편에 서게 된다.
한편, 1454년 단종 2년에 동생 신말주는 과거에 급제했다. 셋째 형인 신숙주가 그를 위해 축하연을 베풀어 준 것은 당연했다. 과거에 급제한 후 그는 맑은 직이라고 칭하는 청직(淸職)을 지냈다.
그러나 신말주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반대하고, 형인 신숙주와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형 신숙주가 세조를 도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데 첫 번째 가는 큰 공을 세우자 신말주는 원종공신 2등에 올랐으나, 병을 핑계대고 처가인 순창으로 돌아왔다.
신말주는 정자를 짓고 명칭을 귀래(歸來)라 했다. 이때 강희맹은 歸去來何事(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로 시작되는 시문을 쓰기도 했다. 신말주의 성품이 형인 신숙주와는 다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는 젊은 시절 날래고 용맹이 빼어났던 사람으로 훗날 전라도 수군절도사를 지내게 된다. 1456년 세조 2년에 귀래정을 짓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면서 시문으로 소일했으며, 형인 신숙주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초기 벼슬을 거절했다. 귀래정에는 김인후의 시문과 수양대군을 돕던 강희맹 등이 신말주를 위해 쓴 시문이 앞에 세워져 있다.
신말주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만큼 강직한 사람이었다. 형인 신숙주와는 달리 자연을 벗 삼으며 지냈다.
그러던 중 세조 5년인 1459년 다시 벼슬길에 오르게 되고, 세조 10년 1464년 집의를 거쳐 1466년 대사간에 오르고 성종 7년(1476)에 전주부윤(전주시장)을 지낸 뒤 진주목사,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를 지낸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때가 되면 존재감이 없는 이들이 줄을 대려고 한다. 정작 이러한 정치인들이 바라봐야 할 표상이 바로 신말주가 아닐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자신의 기개를 꺾지 않았던 신말주의 의연함이 오늘의 정치인들에게는 과연 사치스러운 것일까?
2014년 11월 0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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