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발략' 호 깃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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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11.10)
조우성의 미추홀-'발략' 호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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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대한 현지 정보를 인천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 러시아 관련 학과나 어학과를 설치한 지역 대학이 없을 뿐 아니라, 장기간 투자해 '러시아 통'을 육성한 바도 없기 때문이다. 그간 일부 '친러' 인사들이 일방적으로 전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모 지가 칼럼을 통해, 지난달 30일 모스크바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러·한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한·러 포럼'에서 나온 러시아 인사들의 몇몇 발언을 소개하면서 "수교 24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전하고 있다.
▶"실수로 해서 어뢰가 터져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보고서가 있으니 5·24제재 조치는 당연히 해제해야 한다", "미국 압력 탓에 (한국이) 6년 넘도록 관광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 관광객이 사망한 곳이 금강산뿐이냐", "북한이 극단적 조치(핵개발)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스몰로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한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수히닌 전 주북한 러시아대사, 이바셴초프 전 주한 러시아 대사가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문득, 십 수 년 전에 어쩌다가 만나게 된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무관인 싸베스코 대령의 억지 보고가 떠오른다.
▶인천에 와서 '제물포 해전' 전사자에 대해 탐문하던 그를 만난 필자는 "한국인은 제물포 해전 때 러시아 수병을 도와줄 처지가 못 됐다. 당신네 부상자를 치료해 준 것은 오히려 일본군이었다."고 분명히 전한 바 있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정반대의 보고를 본국에 했던 것이다.
▶'한·러 포럼'에 등장한 러시아의 한국 전문가들에 앞서서 그도 제 입맛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각색했고, 결국 그를 전제로 한 양국 정상의 동의하에 '제물포 해전 추모비'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건립의 전제 조건이었던 한국인의 러시아 수병 구조는 없었던 일이다.
▶제물포 해전은 단지 대한제국 침탈의 전초전이었다. 그럼에도 추모비 건립 후, 인천서는 러시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절정이 자폭한 '발략' 호의 깃발 대여였다. 그간 반환여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하던'발략 호' 깃발이 돌아온다고 한다. 당연한 비결이다. 이를 계기로 보다 성숙한 한·러관계가 전개되길 바란다.
/주필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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