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장태한(74회) 기고/인천출신 영웅 이응호(조지 리)(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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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4. 8.27)
인천출신 영웅 이응호(조지 리)
/장태한 UC 리버사이드 대학교 교수
▲ 장태한 UC 리버사이드 대학교 교수
인천 출신 영웅이 있다. 한국인 최초의 파일럿 이응호(George Lee)다. 이응호는 1896년 제물포에서 출생한 인천인이다. 소년 이응호는 일곱 살이 되던 1903년 미국으로 떠나는 아버지 이두형을 따라 태평양을 건너는 이민선 '갤릭'(Gaelic)호에 올랐다(인천 내리교회 자료에 따르면 정확한 출국일은 1903년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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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호는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도 독립운동에 지성을 다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났다. 그가 18세가 되던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신문이 온통 전쟁뉴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응호는 조종술을 배워 한국의 독립에 기여하고자 미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맞아 러시아군이나 미군, 그리고 영국군으로 참전했던 다른 한인들처럼 전장에 나가 군사적 노하우를 익혀 후일 조국의 독립전쟁에 활용하려고 미군 파일럿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응호의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수차례 미군 모병관을 찾아가 미군에 입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미군 모병관은 이응호의 입대 희망을 일축했다.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계의 입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이 격렬해지면서 미국도 아시아계의 군 복무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고 이응호는 미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이응호는 미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훈련을 받고 파일럿이 되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총156회 출격을 기록하는 전쟁영웅이 되었고 수천년 한민족 역사를 통틀어 최초의 파일럿이 됐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최초의 파일럿은 1921년 일본에서 조종사가 된 안창남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이응호는 안창남보다 3년전인 1918년 5월쯤 미군에 입대해 파일럿이 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파일럿이 탄생한 날이다. 1921년 일본에서 파일럿이 된 안창남은 한국인으로서 한반도 상공에서 첫 비행을 했던 파일럿으로 당시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의 파일럿은 안창남이 아니라 바로 인천인 이응호이다.
인천의 위대한 유산을 인천인들 스스로 무관심하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있는듯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영웅은 찾아서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기억할때 비로소 발굴되고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 발굴된 인천 영웅들을 인천인들이 소중히 기리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파일럿 이응호는 인천의 자랑이며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게을러 김영옥과 이응호와 같은 인천 영웅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모든 학교에서 인천 영웅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남긴 유산이 무엇이며 학생들 스스로가 인천인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게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인천 이민사 박물관을 적극 활용하고 인천이 자랑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태한 webmaster@kyeongin.com
2014년 08월 27일 수요일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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