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충무공 어록비(語錄碑)(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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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8.27)
조우성의 미추홀 - 충무공 어록비(語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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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태 전 해군 참모총장이 제2함대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였다. 하루는 군견훈련소 졸업식을 참관할 수 있었다. 꿩들이 날아오르는 정경과 군견 시범도 흥겨웠지만, 덕장으로 유명한 지역 선배를 만날 수 있었던 게 감동이었다. 두 달 뒤, 다시 정훈장교의 연락을 받고, 조촐한 집무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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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제독은 장병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충무공의 어록비를 세우려는 데 어느 말씀이 더 났겠느냐며 대학 노트를 내밀었다. 손수 적은 글씨였다. 필자는 섣불리 말할 수 없어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노라고 했고, 며칠간 다음 구절들을 읽고 또 읽었다.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망령되게 움직이지 말라, 산처럼 무겁게 침착하라", "이 원수들을 섬멸할 수 있다면 죽어도 원한이 없습니다" 말씀이 다 귀하게 들렸다.
▶다만, '대한민국의 후예 수군'들에게 충무공의 애국충정이 절절하게 집약돼 있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가 더 마음에 든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 얼마 후 서예가 청람 전도진 씨가 쓴 어록비가 사령부 정문에 세워져 오가는 장병들의 가슴에 충무공을 새기게 했다.
▶요즘 '충무공 신드롬'으로 사회가 출렁이고 있다. 1600여만명이 동참했다고 한다. 경직된 사회구조와 일본의 괘씸한 반한 캠페인 등이 그 요인으로 보이지만, 어떤 이들은 교황 방문을 그에 꿰맞춰 '국가 리더십 부재'라는 정치적 흥행을 노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인 양무호를 이끌었던 이가 인천의 신순성 함장이요, 그 모항 또한 인천항이었으며, 해군사관학교인 조선수사해방학당도 강화에 있었고, 대한민국의 서·남 해역을 지키는 해군사령부가 모두 인천에 있었다는 지역사가 필자의 눈앞에는 어른거렸다.
▶신순성 함장의 뒤를 이은 안병태 제독, 그의 실제이자 최초의 잠수함 함장인 안병구 제독을 배출한 이 나라 해군의 본향이 인천인데, 해사는 진해에, 2함대는 평택에 내주고, 해역방어사령부는 갈 곳을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주필
조우성 webmaster@incheonilbo.com
2014년 08월 2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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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호님의 댓글
안병태 전 해군 참모총장 - 5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