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가을 달빛은 그 밝음을 드날린다 (퍼온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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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4. 9. 1)
가을 달빛은 그 밝음을 드날린다
/원현린 논설실장
주말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우리 민족이 추석 명절을 지내온 지도 천년이 넘었다. 조선 정조 때의 문신 김매순(金邁淳)이 1819년 한양(漢陽)의 연중행사와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따르면,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었다.
이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仲秋)는 또한 가절(佳節)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벽촌의 가난한 집안에서라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이 세시기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가운데 추석이 제일 큰 명절이었다.
이에 관한 기록을 보면 “사대부의 집에서는 설날, 한식, 중추, 동지의 네 명일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설날과 동지에는 혹 안 지내는 수가 있으나, 한식과 중추에는 성대히 지낸다.
그러나 한식보다 중추에 더 풍성하게 지낸다”라고 돼 있다. 반상(班常)이 뚜렷해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임에도 이 기록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이날만큼은 양반, 상민, 천민 할 것 없이 온 백성이 추석 명절을 즐겼다. 이에 관해서도 “유자후가 말한 바 ‘조(병졸), 예(노예), 용(고용인), 개(거지) 등도 모두 부모의 산소에 성묘하게 되는 것이 이날뿐이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이 책은 적고 있다.
「농가월령가」에서도 가을의 풍요를 한껏 노래하고 있다.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온갖 곡식 열매 맺고 결실을 재촉하니 들에 나가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온갖 곡식 이삭 패고 무르익어 고개 숙여 서쪽 바람에 익는 빛은 누런 구름처럼 일어난다.
흰눈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송이,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볕에 맑고 밝다. 참깨 들깨 거둔 뒤에 일찍 여문 벼 타작하고, 담배 녹두 아쉬워도 팔아다가 돈 마련하고,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젓조기 사다 추석 명절 쇠어 보세. 햅쌀로 만든 술과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성묘하고 이웃집과 나눠 먹세….”
생활이 곤궁했던 예전 농경사회에서도 가을만큼은 이처럼 풍성함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번 가을은 풍요를 구가할 만큼 그다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보인다.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정쟁(政爭)의 소음(騷音)은 이제 국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하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이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국해(國害)의원’들의 이해키 어려운 일거수일투족과 망발들은 ‘다만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 소리(只作耳邊風)’에 지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가을을 노래한 시가(詩歌)는 많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대표작 ‘가을 날’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금년에는 어느 해보다 아픔을 많이 겪고 있는 우리다. 어이없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참사가 그랬고 오늘도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군부대 내에서의 가혹행위, 최근 부산지역의 폭우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이어졌다.
아픔이 너무 크다. 주위를 둘러보면 위로와 격려를 보낼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아동복지기관과 양로원 등 시설원이 그곳이다. 이들과도 함께 나누는 올 추석 명절이 됐으면 한다.
염제(炎帝)의 늦더위 있다 하나 계절의 순환은 거스를 수 없는가 보다. 조석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여느 해보다 일찍 찾아온 추석이 꼭 1주일 남았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가을을 읊기를 “추월(秋月)은 양명휘(揚明輝)”라 했다. 그렇다. 가을 달빛은 유독 그 밝음을 드날린다. 지금 나라 안팎이 어려운 일들과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다. 다가오는 추석날 저녁에 떠오를 둥근 보름달에 국태민안(國泰民安)과 국운융성(國運隆盛)을 빌어 보자.
2014년 09월 0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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