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장태한(74회) 기고/인천 영웅 '김영옥 대령'(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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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4. 8.13)
인천 영웅 '김영옥 대령'
/장태한 김영옥 재미동포 연구소장·UC 리버사이드대 교수
▲ 장태한 김영옥 재미동포 연구소장·UC 리버사이드대 교수
인천 영웅 김영옥을 아는가? 2011년 5월 31일 미국 현충일을 맞아 미국 유명 포털 사이트인 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 16인을 선정해 발표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남북전쟁의 영웅 로버트 리 장군, 그리고 맥아더 장군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한국계 2세 김영옥 대령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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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대령은 누구인가? 그는 인천인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버지 김순권 선생이 인천 출신이다. 김영옥과 그의 누나인 윌라 김여사는 아버지가 인천의 염전 근처에서 사셨다고 기억하고 있으며 인천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영옥은 일제 시대인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반일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아이러니컬하게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100대대의 지휘관으로 그들의 영웅이 됐다. 놀라운 사실은 로스앤젤레스의 일본타운에 가면 일본계 미국인 재향군인회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있고 그 옆 건물에는 회장 김영옥 대령이라고 적혀 있다.
김영옥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적진인 독일군 진지에 들어가 2명의 독일 병사를 포로로 생포해 연합군이 로마에 진군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프랑스의 조그만 마을 비퐁텐느에 가면 성당입구에 김영옥을 기억하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김영옥은 프랑스 정부에서 당시의 공로를 재평가받아 최고 무장훈장을 받은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이다.
김영옥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퇴역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미군에 입대했다. 모두들 말렸다. 전쟁영웅인데 뭐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으로 가는가. 그러나 김영옥은 '모국을 위해 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원했다. 연합군 사령부가 있는 도쿄에 도착한 김영옥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계 장교 김영옥을 한국으로 보낼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다행히 김영옥은 유럽전선에서 싸울 때 알게 된 많은 상관들을 도쿄에서 다시 만났고 그들의 영향력을 총동원해 한국으로 갈 수 있었고 중부전선에 투입됐다. 김영옥부대는 바로 중부전선 60㎞ 북상의 주역 부대였고 휴전선의 모습을 갖게 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늦게나마 김영옥의 공로를 인정해 2006년 2월 하와이서 거행된 장례식에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김영옥 대령은 대한민국,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을 받은 유일한 군인이다.
전쟁 중에도 고아를 돌보는 인도주의자로서의 모습도 보여 줬다. 용산에 위치한 경천애인사 고아원을 김영옥부대원들이 휴가 때 자발적으로 방문해 자원봉사를 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많은 비영리 단체들도 김영옥 대령 주도로 설립되기도 했다. 김영옥은 은퇴 후 소수자·여성·고아·입양아 등 약자를 위해 평생 봉사해 온 인도주의자다. 안타까운 일은 고 김영옥 대령의 중요 유품이 인천 이민사박물관에 기증됐으나 전시도 안 하고 묻혀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는 김영옥관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부했으나 감감 무소식이다.
다행히 김영옥 대령은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아이들이 배우며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인천인들은 왜 아직도 맥아더 장군만 알고 김영옥은 모르는가?
장태한 webmaster@kyeongin.com
2014년 08월 13일 수요일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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