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유년의 기억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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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6.11)
조우성의 미추홀 - 유년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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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직후, 필자는 동구 소재 송림초등학교에 다녔다. 먹을거리가 시원찮았던 때라 아이들은 늘 배고파했었다. 학교 앞에서 아주머니들이 팔던 어묵, 고래 고기, 족편, 오징어 부침 등 간식거리가 있었으나 사 먹기가 버거웠고 배를 채울 수도 없었다.
▶그때는 교실이 부족해 오전ㆍ오후반으로 갈라 등교했지만, 그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우유를 끓여 나누어 주었다. 냄새가 고소한 '미제(美製) 우유'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를 받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그때의 '따듯한 우유 한 잔'은 우리들에게 '큰 행복'이었다.
▶학교에서는 우유 급식 말고도 3일에 한 번씩 번갈아 분유와 밀가루를 주었다. 공부가 끝나면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드럼만한 분유통이 있는 교실로 데리고 가 가지고 온 부대에 분유 등을 세 되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이 모두 밀가루 부대를 어깨에 둘러맨 채 하교하는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어머니들이 이를 반긴 것은 물론이다. 요긴한 양식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밀가루로는 주로 수제비나 칼국수를 해 먹었다. 분유는 양재기에 담아 밥할 때 같이 쪄서 4각형으로 자른 다음 식혔다. 입에 넣으면 툭 불거질 만큼 컸었는데, 잘 녹지 않아 하루 종일 사탕처럼 입에 물고 다녔다.
▶학교에서 나눠줬던 것이 또 하나 있다. '회충약'이었다. 커다란 가마솥을 운동장 한켠에 걸어놓고 미역 비슷한 해초를 온종일 끓였는데 냄새가 퍽 고약했다. 선생님들은 이걸 '산토닝' 대용이라 했고, 아이들은 무슨 한약을 받아든 것처럼 얼굴을 찡그려 가며 마시곤 했다.
▶이튿날 학교 화장실은 그야말로 목불인견! 재래식밖에 없던 시절이어서 밑이 훤히 보였는데 여기저기에 말지렁이보다 훨씬 큰 회충들이 털실뭉치처럼 엉킨 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몸속에 저렇게 크고 흉한 기생충들이 살고 있다는 징그러운 기억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필자 연배들에게 '우유'는 소풍날 어쩌다 먹던 '삶은 달걀', '사이다'와 함께 아직도 호화로운 먹을거리에 속하리라 싶다. 그런데 최근 그 '우유'의 재고량이 엄청 넘쳐난다는 뉴스가 들린다. 유년시절에 비춰보면, 어쨌든 복받은 세상이란 생각도 든다.
/주필
2014년 06월 1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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