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향판(鄕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4. 4. 2)
조우성의 미추홀 - 향판(鄕判)
( 7449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980년대 말 얘기다. 새내기 검사 한 사람이 인천에 부임해 왔다. 그 직후 중앙 부서의 실력자 한 사람이 인천의 유력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향 후배인데 잘 봐 달라는 취지의 인사인지, 압력인지 모를 통화였다고 한다. 그 내용은 공공연한 시중의 비밀로 알려졌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번엔 모 인사가 타지로 영전해 갔다. 그때 그와 안면을 튼 일부 인사들이 적지 않은 전별금을 그에게 전했다는 소문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사실을 확인해 준 이는 없었지만 그런 동행 관계를 관행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 지난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 같은 '비정상적 풍토'가 다 없어졌지 싶었다.그런데 근자에 채동욱 총장 사건과 광주의 '향판 사건'이 터졌다. 구체적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을 경악케 했다. 끝 모르는, 있는 자들의 도덕적 파행을 바로잡아야 할 일부 검·판들이 그들과 함께 춤을 춘 것이다.
▶그에 따라 도마에 오른 것이 세칭 '향판 제도'다. 일각에서는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학연·지연·혈연이 사회 전반에 무시 못할 힘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법관을 출신지에 부임시킨다는 것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게 하는 탁상 발상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그래서 굳이 '향피(鄕避) 제도'를 택했다. 고향을 피해 타지에서 일을 하도록 해 토착세력과의 유착을 막아 부정부패를 예방하자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법원이 역사에서 지혜를 얻지 못하고 굳이 '향판' 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광주·대구·부산·대전 등 고법 관할 4개 지역의 향판이 무려 300여 명이라는데, 그들을 색안경 끼고 보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궁극에는 역시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1950년대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 원장이었던 향판 김정렬(金正烈) 선생의 청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묵헌(默軒) 선생은 훗날 제2대 민선시장, 예총회장, 인천유도회 회장, 심계원 차장 등을 역임하면서 시민들에게 존경을 받아 송덕비(수봉공원 소재)의 주인공으로 된 바 있다. 선생처럼 헌신한 청백리 향판이라면 세상에 누가 마다하겠는가.
/주필
2014년 04월 02일 (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