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특별기고/정치판의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14. 3.19)
특별기고 /
정치판의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야권 신당이 출현하면서 우선 6·4 지방선거 참패라는 악몽에서 벗어난 듯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제는 여야가 맞설 만한 상황이 됐다고 평가한다.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진실하고, 말이 통하고, 사회와 역사 앞에 떳떳한 당선자를 내야 한다는 당위에 앞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가뜩이나 불통으로 나가고 있는 박근혜정부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는 판이려니와, 야권이 힘을 모으지 않고는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오합지졸 같은 민주당이나 새 정치 운운하지만 노선과 인물·조직을 갖추지 못한 채 도대체 말과 행동이 이해하기 어려운 안철수 의원의 세(勢)가 합쳐 봤자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신당에 대승을 안겨 준들 무슨 미래가 확실해질까 염려부터 떠오르는 걸 어쩌랴.
결국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우리 유권자는 쉽지 않은 선택(No easy choice)에 놓여졌다. 더구나 ‘약속은 지키는 정치’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라는 도덕주의적 이분법을 동원하는 안철수 의원의 주장 앞에서는 깊은 회의감마저 든다.
안 의원은 약속한 것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단단히 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약속한 정치적 결정이 왜 이 나라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독자 노선이나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정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며 지켜야 할 가치라는 점에 대해서는 신통한 대꾸가 없다.
민주당과의 통합에서 정당공천제 폐지가 고리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그동안 주장해 온 독자 노선을 왜 지키지 못했는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없다. 그야말로 자신이 하면 새 정치라는 식의 선언뿐이었다.
안철수 의원이 애초부터 민주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새 정치를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 나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할 정도의 사정이 있었는지 유권자는 알 수도 없으려니와 안 의원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유권자는 알 필요도 없다는 투다.
사실 그동안 안 의원은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된 사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아니 잘못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전형적인 구태정치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6·4 지방선거 승리가 중요하겠으나 유권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당이 이기느냐보다는 정당의 노선과 정체성이 무엇인지가 더 큰 관심사다. 특히 안 의원이 보여 주고자 했던 중도 노선의 정치가 민주당과 합당한 뒤 소멸될 것인가 유지될 것인가 궁금하다.
우리 정당사와 선거사로 보면 유통기간이 너무 짧은 정당들이 나와서 기득권에 안주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합당 내지는 신당 창당이 너무 빈번하게 이뤄져 왔다.
더구나 우리 정당들은 당명에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보다는 숨기는 행태를 보여 왔다.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중도 우파인지 중도인지, 중도 좌파인지 불분명한 이름들이었다.
어찌 보면 유명 패션 브랜드 작명하듯 해 왔다. 이번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범민주진영의 중심 정당이 출현해야 한다는 바람에 역부족이다.
슈미트라는 정치학자는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정치학에서는 이것이 고전적 규정처럼 통한다. 허나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환경은 적과 동지의 경계선을 흐리게 해 중간 지대를 획득하는 것이며 적은 최대한 비(非)적대화 중립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천평어람(天平御覽)」에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고사가 나온다. 제나라에 시집갈 나이의 처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집에 두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 집 청년은 인물은 보잘것 없으나 매우 부자였고, 서쪽 집 청년은 인물은 출중했으나 집이 몹시 가난했다.
아버지는 딸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만일 동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고 서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라”고 했다. 처녀는 손을 들었는데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이었다. “낮에는 동쪽 집에 살면서 먹고 밤이 되면 서쪽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외에도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 민주진영에서 어떻게 공동 리더십을 만들어 내느냐가 핵심일 터. 그걸 김한길·안철수 두 사람의 연합으로 가능하다고 여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2014년 03월 19일 (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