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만년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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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3.19)
조우성의 미추홀 -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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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를 작파한 지 오래다. 여러 사정이 있었으나 가장 컸던 요인은 척하면서 시에 써댔던 말들이 점점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젊은 날 피 끓는 에스프리 혹은 광기가 시였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시와 일상이 천양지차로 빗나가는 괴리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 공간을 하릴없이 거닐며 사는데 느닷없이 원고 청탁을 받는다. 내용은 '육필시(肉筆詩)' 한 편과 사진, 약력, 원고료 보낼 주소를 보내라는 것이다. 시지가 거의 다 망한 판에 평론가 김재홍 교수가 하는 계간지 '시와 시학'은 아직도 깃발을 내리지 않은 모양이다.
▶김 교수가 인하대 국문과에 재직하던 시절, 한동안 대학원에서 김 교수의 '비평론'을 듣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필자를 아직 시인으로 여겨주고 있는 것이 겸연쩍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 미적대다가 발표하지 않은 구고(舊稿)에서 한 편을 골라 써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필자에게는 만년필이 두 자루 있다. 하나는 선친이 물려주신 '파커62'인데 촉이 다 닳아 수리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존경해 따랐던 인생 선배 정공훈 사장께서 생전에 건네주신 검정색 '몽블랑 146'이다. 서랍을 뒤져봤더니 다 있었다. 묵직한 몽블랑을 모처럼 잡았다.
▶그런데 잉크가 없었다. 집안에 나뒹굴었던 '파이로트'가 보이질 않는다. 만년필로 글을 쓴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다. 이튿날 아파트 앞 문방구엘 갔더니 잉크가 없다고 한다. 인근 간석동 대형마트엘 갔다. 거기서도 팔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야 푸른색 한 병을 구했다.
▶중구 도원동 광성학교 아랫동네의 작은 문방구에서였는데, 작은 병(30ml) 하나에 5천원을 한다. 상상을 초월한 값이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찾는 사람도 없고, 구색을 갖추기 위해 갖다 놓기는 했지만 1년 만에 겨우 지금 한 병 파는 것이라고 주인이 외레 신기해 한다.
▶만년필로 글을 쓰자니 삐둘빼둘이다. 낯설다. 이게 내 글씨인가 싶다. 문득 '만년필이 아니면 글을 못 쓴다'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도, 나도 오늘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살고 있다. 세월은 그렇게 거짓말 속에 흘러간다.
/주필
2014년 03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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