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마라톤 도시 인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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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3.28)
조우성의 미추홀 - 마라톤 도시 인천
(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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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싱그런 바람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불고 있는 마라톤의 열기가 대단하다. 국민 스포츠라 할 만큼 붐을 이루고 있지만, 인천이 마라톤의 도시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마라톤으로 인천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개화기 당시 축구와 야구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후 그를 웃터골운동장에서 직접 펼쳤던 스포츠 선진 도시이자, 인천 서울 간에 놓인 경인국도가 별도로 정비하지 않아도 42.195km를 달릴 수 있는 정식 마라톤 코스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출발지는 대개 인천이었다.
▶최초의 공식 마라톤대회는 1920년 조선체육협회 주최로 서울을 한 바퀴 도는 '경성일주대회'였고, 1927년 12월 4일 서울 소재 제강상회(諸岡商會)가 인천-경성 간 역전(驛傳)경주대회를 개최한 이후 인천은 줄곧 각종 마라톤대회 출발지로서 이름을 높였다.
▶인천에서 자체적으로 마라톤대회를 처음 연 것은 1935년 4월21일이었다. 오전 10시12분 40여명의 선수가 조선매일신문사 앞을 출발해 시내를 일주한 후 결승점인 월미도로 향했는데, 출전 선수 중 최연소자인 동아일보 인천지국 이안순(李安淳)이 우승해 화제였다.
▶그 무렵 이색적인 '내한(耐寒) 마라손'도 등장했다. 1936년 1월 25일 인천환옥미두취인소(丸玉)의 김용균(24세) 선수가 혹한에 인천에서부터 전남 여수까지장거리를 주파했는가 하면, 월미도 벚꽃놀이 때인 5월 10일에는 40여 명의 선수가 출전한 '인천 관앵(觀櫻) 마라손대회'도 열렸다.
▶1937년 인천에서 활약했던 이길용 기자의 일장기 말소사건, 1940년 서울 경영단교경기대회(京永斷郊)에서 우승한 현정효 선수의 등장, 인천공고 등이 매년 참가한 1950년대 경인역전경주대회, 9·28수복기념 국제마라톤대회 등을 통해 전통을 이어온 인천 마라톤이었다.
▶2001년부터는 본보가 인천육상연맹과 함께 인천국제마라톤대회와 강화해변마라톤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왔다. 국내 최초로 공인을 받아 제14회를 맞는 인천국제하프마라톤대회도 큰 인기였다.올해는 1만5000명이 신청해 조기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주필
2014년 03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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