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소농 선생의 향토애(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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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2.21)
소농 선생의 향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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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小 人+農) 김상봉(金相鳳) 선생은 1931년 인천 숭의동 여우실에서 태어나 숭의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를 거쳐 동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대중일보의 후신인 인천신보, 경기매일신문과 동양통신 편집부 기자, 주간인천 등에서 맹활약한 지역 언론계의 큰 어르신이다.
/대학 시절에 양주동 박사를 비롯해 이은상·이병기 교수 등 국문학 거성들의 영향을 받았고, 광복 직후 한글을 배우며 크게 감격해 눈물을 흘렸던 '한글 신세대'이기도 했다. 인천중학교 시절에는 예술에 심취했지만, 대학 때 정치학과에 들어가 사회활동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반민특위 인천지부를 이끌었던 권성오 선생이 주간(主幹)인 '주간인천'에 들어가 정치부장으로 크게 활약했고, 1951년 말 서울의 '대한신문'이 인천에서 전시판(戰時版)을 만들 때도 김양수 선생과 참여했으며. 1954년에는 시 기관지 '인천공보' 창간에도 관여했다.
/4·19 직후 '주간인천'이 일간지 '인천신문'으로 전환하자 논설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명필을 날렸는데, 한편으론 당시 언론단체 '타임클럽'을 결성해 기자의 자질 향상과 권익 보호 등 지역 신문기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진작시키는 사업에도 관심을 두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소농 선생은 1974년 우현 고유섭 선생 30주기를 맞아 신태범·이경성·박광성·김양수 선생 등 지역사회 원로·중진과 논의해 '우현 선생 기념비'를 인천시립박물관(현 제물포구락부) 정문 앞에 세웠는데, 이는 인천에서 인천의 인물을 기렸던 첫 사업이었다.
/또 하나 특기할 일은 그 4년 뒤 김양수·박광성 선생 등과 함께 계간지 '기서문화(畿西文化)'를 창간한 점이다. 1973년 군사정부의 소위 '3사(社) 통합'에 따라 근무하던 경기매일신문이 사라진 게 한으로 남아 그 공백을 메우고자 이를 발행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아벨서점(대표 곽현숙)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시 다락방'에 평생 애지중지하던 희귀 잡지 등 다수의 도서를 기증해 화제다. 아벨서점은 이를 계기로 '책 역사관'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소농 선생의 뜨거운 향토애에 다시금 경의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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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2014년 02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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