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빙족희(氷足戱)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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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2.12)
조우성의 미추홀 - 빙족희(氷足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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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스케이트가 있었다. '대발'이라는 건데, 짚신바닥에 대나무쪽을 댄 것이어서 꽤 잘 나갔다고 한다. "겨울에 한강을 건너려면 양 기슭에 '대발 막'을 세우고, 대발과 막대를 짚어 도강했다"고 이상은씨 등이 쓴 '한국 피겨 스케이팅 100년'이란 책에 소개돼 있다.
▶지금의 썰매와 비슷한 '설마(雪馬)'도 있었는데, 교통과 수렵에 이용했다고 한다. 스케이팅이 '빙족희(氷足戱)'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것은 명성황후 때라는 게 통설이다. 1895년 제물포에서 가마를 타고 상경했던 영국의 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쓴 '조선과 이웃나라들'에 나오는 얘기다.
▶"고종황제와 황후는 유럽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친절을 베풀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에 있는 외국인을 호수(향원정)에서 연 스케이팅 파티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때 "명성황후가 발을 치고 남모르게 구경했었다"는 이규태 선생의 칼럼도 있다.
▶그 무렵, 인천에서도 스케이팅이 등장했을 듯싶은데, 확인할 수가 없다. 한참 뒤인 1924년 2월10일 인천부 송림리 스케이트장에서 제1회 빙상경기대회를 연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현재로서는 공식적인 최초의 빙상 기록이다. 그나마 실제로 열렸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열정만은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다. "인천 초유의 경기임에 따라 부내 유지의 동정이답지하는 터인데, 얼음 형편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이므로 당일에 대회를 거행하게 될 때에는 연화(煙火)를 놓아 부민에게 알릴 터"라고 한 대목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당신 자신이 경성제대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던 한옹 신태범 박사는 유저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서 "각국지계의 양인들이 스케이트를 처음 탔다는 말을 들었다. 한창 때는 스케이트 애호가가 백 명이 넘었다."고 초기 인천의 빙상 정황을 전한 바 있다.
▶박현민, 이국성, 김광용, 신태범 선수 등이 제1세대 빙상인으로 활동했고, 광복 후인 1966년 이박 선수가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데 이어 40여년 만인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의 이은별 선수가 선전해 인천의 명예를 드높였다.
/주필
2014년 02월 1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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