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일왕의 돌 사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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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2.27)
조우성의 미추홀 - 일왕의 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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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진기 명품에 '라이카 M3'가 있다. 소년시절 구멍이 뚫리지 않은 변변한 양말 한 번을 못 신어본 형편이었지만, 대중일보의 후신인 인천신보에서 문화·사진부장을 겸하고 있던 선친이 어렵사리 마련한 가보 1호가 'M3'였다. 어린 눈에 보아도 디자인이 멋 있었다.
▶필름은 그 유명한 코닥.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중앙동 4가 신문사 옆의 신호양행에서 현상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집안에서 흑백사진과 필름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사진이 귀하다는 필자의 인식은 그때부터 싹텄고, 라이프 잡지도 한몫 했던 것 같다.
▶'헝거리 의거' 때 라이프 기자가 찍은 러시아군의 학살 장면사진은 충격이었다. 손으로 총알을 막아보려고 몸서리치는 헝거리 젊은이의 눈과 얼굴 모습은 지금도 떠올릴 수 있다. 사진은 짧은 머리, 공포에 일그러진 얼굴, 앞으로 내젓는 손-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착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성장한 필자는 자연스레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카메라 기술을 배울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이들이 찍은 사진만을 구했다. 주로 골동상을 통해 돈을 주고 샀는데, 가장 호되게 산 것은 '인천의 4·19 의거' 사진이다. 필자에겐 보물일 수밖에 없는 목록이다.
▶당시 라이프지 기자가 인천시청 부근과 신포동 춘방양복점 근처에서 찍은 몇 커트와 원로 사진작가 김천길 선생이 렌즈에 담은 경동파출소 학생 데모대 말고는 처음 보는 희귀사진들이었다. 연전에 인천시 김동빈 과장의 주선으로 '4·19사진전'을 인천공고와 시청에서 열었다.
▶기타 사진들은 서울 장안평의 골동상으로부터 여러 차례 구하곤 했는데, 영 알지 못할 사진 한 장이 섞여 들어왔다. 강보에 싸인 아기였다. 일제강점기 때 사진은 대개 사진관별로 철인(鐵印)을 해서 출처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데, 그 사진은 달랐다. 숙제는 일본에서 풀렸다.
▶사적인 일로 일본에 가서 아사히신문을 보니, '천황 폐하 오늘 산수(傘壽)'라는 특집에 실린 출생 직후의 사진이 그 사진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서글픔이 그 사진으로 인해 착잡하게 다가왔다. 사진 한 장이 전해 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다.
/주필
2013년 12월 2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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