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난국지세(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11.25)
조우성의 미추홀 - 난국지세
( 1100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5세기 일본은 하이테크 국가 '조선'을 침략했다. '오란다' 것을 베낀 신식 무기로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다. 치부를 겨우 가린 '훈도시' 차림에 조총을 둘러멘 모습이 희한했겠지만, 현실은 참혹한 패배의 연속이었다. 통신사에게 인문을 배웠던 자들이 아니었다.
▶세계 최첨단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해 온 나라를 밥그릇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해 도공을 납치해 간 그들에게 무단히 짓밟혔다. 그러나 조선 관군은 변변한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파죽지세 속의 아비규환이었다.
▶ 왜군이 무서워한 것은 관군이 아니었다. 현지의 지리를 속속들이 알아 때도 시도 없이 공격하고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지는 의병과 승병의 게릴라 식 전술에 왜군들은 혼쭐이 났다. 하지만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전력엔 당해낼 재간이 없어 급기야 도성 한양을 내주게 된다.
▶그때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왜군이 궁궐에 도착하기도 전에 궁궐이 훨훨 불타오르고 있었다. 앞장서 나라를 지켜야 할 왕과 신하들이 비 오는 날 밤, '몽진'이란 이름으로 '백성'을 저버린 데에 대한 울분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지배층에 대한 불신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다.
▶그러고도 조정은 정신을 못 차리고 목숨 바쳐 싸우는 충무공을 감옥에 가두는가 하면, 인천부사 김찬선 같은 지역의 탐관오리들은 전시 중임에도 가렴주구를 일삼아 백성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는데도 임진왜란이 막을 내렸던 것은 역사적 천행이었다.
▶국내외 정세가 그때 그 무렵 전야와 진배 없어 보인다. 맑은 윗물이어야 할 정치계, 공무원계,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사회계 등은 저만이 '선(善)'이라며 '마피아'처럼 '패거리 챙기기'에 여념 없고, '하나 된 민족'의 한쪽은 다시금 '불바다'를 운운하고 있는 난국지세이다.
▶오늘의 '왜'와 '명'도 '조선'을 윽박지르고 있다. '아라사(俄羅斯·러시아)'와 '미리견(彌利堅·미국)'의 계산도 만만치 않다. 이 얽히고설킨 파고를 어찌 헤쳐 가야 하는가? 말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백성'의 시름만 더욱 더 깊어 간다.
/주필
2013년 11월 25일 (월)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