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관동대지진 학살(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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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1.27)
조우성의 미추홀 - 관동대지진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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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최근 옛 중요 문서가 뒤늦게 발견됐다고 한다. 그에 3·1운동 희생자와 관동대지진 때 학살자 명단이 포함돼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고 보존해 온 나라에서 어찌 기록문서의 관리가 이 모양인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로써 105명의 3·1운동 순국자를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것도 선조들께 죄스러운데,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광란에 빠진 일본인들의 만행에 이르면 몸서리가 쳐진다. 평소 자식들에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며 산다는 저들의 만행은 상상을 절한 최악의 잔혹사이다.
▶빛 바랜 문서에는 일본인들이 울산 출신 39세 박남필씨를 그가 조선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곡괭이로 머리를 쳐' 죽였고, 창녕 출신 23세 한용선씨를 '쇠갈퀴로 개 잡듯' 살해했으며, 함안 본적 40세 차학기씨를 '죽창으로 복부를 찔러' 절명케 했다고 소상히 밝혔다.
▶전직 군경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반관반민 단체인 자경단 단원들과 그에 동조한 일반인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죽였는데, 그에는 헌병도 가담했다. '진재(震災) 피살자 명부'는 "함경도 연고 30세 박성실씨가 일본 헌병에 의해 총살됐다"고 전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거짓말을 해 온 것이 또 드러난 것이다. '진재'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일본의 중소 서점 대부분에 비치돼 있는 관련 서적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은 그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으로, 한마디로 '국화와 칼'이 보여 준 극단적 패닉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일본 유학생이었던 함석헌 선생도 증언을 남겼다. "말마다 '기리 닌존(義理 人間)'이라는 사람, 바로 그 사람들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그 비껴 매었던 일본도, 그 깎아 들었던 대창, 그 증오에 타는 눈들, 그 거품을 문 이빨들, 어디서 그것들이 나왔을까?"
▶"일본 민중은 미쳤습니다. 민중이 없었습니다. 이게 일본이냐? 이렇게 옅고 좁은 사람들이 일본인이냐? 그때 젊은 마음에도 미워한다기보다는 업신여기고 싶었습니다."(수상록 '바보새') 그 일본, 오늘도 업신여김을 받을 일만 저지르고 있다.
/주필
2013년 11월 2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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