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숙청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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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2.16)
조우성의 미추홀 -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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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황실과 귀족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을 가졌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한 뒤 러시아에 돌아온 그는 차르를 비롯한 황족을 모두 처형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우랄 지방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니콜라이 2세 일가와 주치의 등은 목숨을 잃었다.
▶그 후 1938년까지 스탈린은 약 2천만명을 숙청했다고 한다. 그중 200여 만명은 유학파와 기술 관리 등 당대의 고급인력이었다. 그의 숙청 방법은 교묘해 먼저 내부에 적을 만들고, 그 적을 가차 없이 제거하면서 수하와 군부의 충성을 이끌어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오랜 사업의 하나인 '숙청'이 한 세기에 걸친 인류 고난사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이 무려 3천여 만명의 인민을 비윤리적으로 희생시키고, 나치와 같은 현대판 '분서갱유'를 행한 것은 저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과오의 하나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소위 '제3세계 국가'들과 연대하여 중소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쳤던 김일성도 숙청의 전문가였다. 그는 서울시인민위원장, 부수상 등을 역임했던 인천 출신의 이승엽과 남로당 거두였던 박헌영 등을 미제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었다.
▶권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2인자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끝없는 복종을 요구하다가 토사구팽을 한다. 그 주위에서 2인자인 양 착각하던 러시아의 트로츠키와 베리아, 중국의 임표와 유소기 등은 어느 날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됐다.
▶'종파분자', '만고역적'으로 몰려 처형을 당한 장성택의 숙청 과정도 그 옛날 볼셰비키와 다를 바 없이 무자비하다. '북한식' 사법체계의 특성이 무엇인진 모르지만, 기관총으로 상징되는 '공포 정치'에 전 세계가 전율했으리라 싶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에 대해 중국은 '북한 내부의 일'이라며 묵묵부답이고, '내재적 접근'을 주장해 온 인사들 역시 함구 일관이다. 패권주의 부활, 북한의 혼돈이 맞물린 동북아 정세 속에 중국의 탐사선 '창어'가 달에 착륙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주필
2013년 12월 1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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